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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지 않기, 정체성을 찾는 시간

22년 차 맞벌이, 20년 차 워킹맘

by 조여사

결혼하고 아이가 둘 있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은 저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깨우고, 아이들의 아침을 챙기며, 학교에 보내는 등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나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시간은 나에게 행복을 주지만, 동시에 나 자신은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워집니다.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단순히 아이들의 엄마일 뿐인 걸까? 나의 존재는 아이들로 인해 정의될 뿐일까? 하고 말이죠.


회사에서의 부장이라는 정체성은 또 다른 나의 자랑스러운 부분입니다. 온전하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자부심을 안겨줍니다. 주어진 프로젝트를 이끌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나를 성장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회사원으로서의 정체성은 때로는 저를 압박하기도 하죠. 부장이라고 불리는 회사원으로서의 역할이 나의 모든 것을 정의하는 것은 아닐 텐데, 회사라는 곳을 벗어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이렇게 저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원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 속에서 저는 커리어코치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했습니다. 저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돕고, 그들의 경로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은 저에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나의 정체성이 단순히 회사원으로 한정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저를 더 충만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저것 잡다한 지식을 쌓고 싶은 나,

사부작거리며 취미생활을 하고 싶은 나,

책을 좋아하는 나,

옷을 좋아하는 나...


엄마로서의 나, 부장으로서의 나, 커리어코치로서의 나,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의 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들이 서로 충돌할 때도 많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집단에서 나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까?라는 질문은 저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회사원으로서의 나로서도 한 사람의 몫을 해야 하는데, 한쪽에서는 엄마로서의 역할이 부족하다 질책합니다.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월급을 받는 처지에 회사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질책합니다. 이런저런 역할 사이에서 흔들리는 동안 나 자신으로서의 나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맙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다 지쳐버린 저는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정체성을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엮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우선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을 낳은 이상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로서의 역할에 제가 가진 에너지의 70%를 집중하고 나머지 30%는 회사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내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도록, 100%를 모두 사용하지 않도록 조율했습니다. 내 모든 것을 쏟아내면 번아웃이 오는 것을 경험했거든요.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된 후 더 이상 엄마로서의 역할이 예전처럼 필요가 없어질 무렵, 엄마로서 40% 회사원으로서 50% 로 밸런스를 조율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에너지로 저를 찾기 시작했죠.


이렇게 각 역할에 따라 에너지를 조절하며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저는 점차 저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흑백논리처럼 어느 한 가지의 정체성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포용하고 서로를 보완하며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로서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회사원으로서의 책임과 커리어코치라는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위한 시간도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런 균형을 유지하고 각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나로서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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