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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현 Jun 11. 2021

아빠의술버릇

아빠의 술 버릇은 계속된다.

16살부터 집에서 나와 살았던 나는

학창 시절 부모님과의 추억이 많이 없다.

특히나 가족들 먹여 살리려 주말 없이 일하신

아빠와의 추억은 더더군다나 없다.


성인이 되어서 부모님 집으로 놀러 가면

중년인 두 분이 드시기에는 많아 보이는

박스 과자들이 늘 거실 한쪽에 쌓아져 있었다.


어느 날은 오예스, 에이스

또 어떤 날 은 초코파이, 몽쉘

다양한 박스 과자들이 쌓여있었다.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식구였기에

꽤나 어색한 광경이었다.


"엄마 이거 뭐야? 무슨 과자들이 이렇게 많아?"


"몰라, 먹는 사람 없다고 사 오지 말래도, 네 아빠 술만 마시면 사 오잖아~"


새삼 특별할 것도 없다는 엄마의 건조한 대답


"아~! 아빠가 사 오는 거야?"


몰랐다. 아빠의 술버릇을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아빠는 일 끝나면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늘 술을 드시고 오셨고

술 냄새가 고약해서 싫었던 기억뿐이었다.


"아빠 과자 좋아했었어? 몰랐네?"


"뭘 좋아해! 기억 안 나? 니들 있을 때는 술만 마시면 과일 사 왔잖아!"


난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고, 듣고 있던 오빠가 거들었다.


"그래~ 그래서 엄마가 사 올 거면 맛있는 과일 사 올 것이지, 썩은 과일만 

사 온다고 뭐라고 했었잖아"


그랬구나.. 나보다 3년 더 살고, 군대 가기 전까지 

본집에 살았던 오빠의 기억 속에는 아빠와의 추억이 꽤 있었다.


"술 잔뜩 취해서 과일 사러 가니까 술 취한 거 알고 상품가치 없는 것들만 준거지!

나도 과일 안 좋아하고 애들도 다 나가서 먹는 사람 없다고 사 오지 말라고 하니까,

한동안 안 사 오나 싶었는데... 하.. 


이젠 과자 한 박스씩 사 오더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듯한 엄마의 표정ㅎ


"니들 먹으라고 사온 거지 허허"

본인이 사 온 과자를 먹으며 멋쩍었는지 아빠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자, 아빠 얘기라면 할 말이 넘치는 엄마의 말


"봐라, 결국엔 네 아빠가 다 먹지 ㅎ"


하하하하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아빠의 귀여운 술버릇이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웃음을 안겨준 것이다.



"니들 먹으라고 사온 거지 허허"


아빠의 말의 자꾸 가슴에 남았다.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옛날 아빠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자식들 다 크고 성인 돼서야

술기운 빌려해 본 게 처음인 표현이 서툰 아빠


우리가 어린 시절, 본인도 아빠가 처음인 시절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없어 주는 법을 몰랐던,

가장의 역할은 열심히 돈 버는 거라고만 알았던,


나의 아빠는


과자 한 봉지, 과자 한 박스를 빌려

한가득 사 오는 것이

본인이 자식들에게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표현이었던 게 아닐까


그날 이후

나는 본집에 갈 때마다 아빠가 사놓은 과자들을

맛있게 몇 봉지 먹고 온다.


아빠의 귀엽고 서툰 표현에 할 수 있는 나만의 보답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거실 옆에는 과자 박스가 계속 쌓인다.^^

아빠의 술버릇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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