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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청서 Jul 31. 2021

일곱째 날: 알래스카엔 사워도우들이 산다

해쳐 패스, 그리고 사워도우와의 만남

알래스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혼란에 빠뜨린 단어가 있었다.

사워도우 (Sourdough).


내가 아는 사워도우는, 밀가루와 소금, 물만을 사용해 만드는 천연 발효종으로 만든 빵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나를 포함한 내 친구들, 그리고 온 북미가 집에서 만들기 시작한 그 사워도우.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나도 집에서 사워도우를 만들기 시작했다. 갓 구운 빵 냄새는 코로나 블루에 특효약이다.


그런데 알래스카에 도착해 보니, 사워 도우라는 단어가 오만 곳에 다 쓰이고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사워도우 여관, 사워도우 운송, 사워도우 연료 등등이다.

게다가 사워 도우라는 글자 옆에는 웬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에 가까운 사내의 얼굴이 종종 있었다.

알래스카의 사워도우는 내가 아는 사워도우가 아니었다... 사진 출처: sourdoughtransfer.com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찾아보니, 알래스카 토박이들을 일컫는 단어가 바로 사워 도우라고 한다.

이야기인즉슨, 19세기 후반 클론다이크 골드 러시 (Klondike Gold Rush) 시절 황금을 찾아 알래스카로 모여든 사람들이 이 척박한 곳에서 밀가루 한 자루만 들고 사워도우로 연명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워도우도 일종의 타이틀 같아서, 춥고 험한 곳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알래스카 토박이가 되어야만 사워 도우라고 불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다.

아, 여섯째 날 둘러보았던 탈키트나(Talkeetna)에도 꽤나 유명한 사워도우 여관이 있다 (Sourdough Roadhouse. 알래스카에서 예전 여관들을 로드하우스라고 부른다). 우리는 머무를 기회가 없었지만, 이곳 여관에서 먹을 수 있는 사워도우 팬케이크가 그렇게 맛나다고 한다.


그리고 일곱째 날, 정말 위 사진의 트럭처럼 생긴 사워도우와 우연히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탈키트나에서 오늘은 다음 캠핑 예정지인 루이스 호수 (Lake Louise)로 향하는 여정.

1번 고속도로인 글렌 고속도로 (the Glenn Highway)로 향하기 전, 점심 피크닉을 위해 잠깐 휴식을 취한 팔머 (Palmer). 이곳은 빙하가 녹아 만들어지는 마타누스카 강 (Matanuska River)을 마주하고 있는데, 늘 물줄기가 바뀌는 듯한 이 강이 신기해 사진을 찍으러 내려갔다가 근처 픽업트럭 뒤에서 점심을 드시고 계시는 두 분께 짝꿍이 말씀을 여쭈어 보았다. "실례지만, 여기 물줄기가 늘 바뀌나요?" - 그렇게 우리는 우연히 사워도우의 기운이 한껏 느껴지는 한 노부부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빙하가 녹아 만들어지는 마타누스카 강. 이곳에서 우리는 사워도우와 대화를 나누었다.


텍사스와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살다가 알래스카로 여행 와서 눌러앉게 되었다는 노부부. 알래스카에 와서 산 지가 벌써 25년은 훌쩍 넘었다고 하셨다. 위 사워도우 트럭에 있는 캐릭터와 둘도 아니게 생기신 할아버지와, 보트를 타고 여행하기를 즐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뒷 주머니에는 포켓 나이프라기에는 좀 큰 나이프가 떡하니 꽂혀 있었다. (처음엔 그 나이프를 보고 조금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점심을 드시는 중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반갑게 우리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알래스카만 한 곳이 없지. 이런 멋진 풍경을 보며 늘 점심을 먹을 수 있으니까!


여행 왔다는 우리에게, 우리도 눌러앉을지 모른다며 너털웃음을 지으신 할아버지.

알래스카에서 1년 이상 살면 매년 석유 판 돈으로 주민들에게 돈을 주는데, 올해는 코로나 지원금이랑 합쳐 그 지원금이 쏠쏠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적어도 한화 백만 원 이상이었는데..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매년 석유 판매 금액에 따라 액수가 바뀐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해쳐 패스 (Hatcher Pass)에 다녀왔냐고 물으신다. 굽이굽이 산으로 계곡을 끼고 올라가는 도로가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라면서. 이곳에서 조금만 가면 입구가 있다고 한다.

사워도우의 추천이니까! 밑져야 본전이다. 계획에 없던 해쳐 패스로 올라가 보기로 한다.


사워도우는 언제나 옳다. 빵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해처 패스(Hatcher Pass)는 탈키트나 산 (Talkeetna Mountains) 위를 올라가는 길인데, 굽이진 길을 꽤나 크게 불어난 계곡을 끼고 올라가면 눈 덮인 산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우리는 해처 패스 비앤비 (Hatcher pass bed & breakfast) 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는데, 나머지 길은 아직 빙판길이라 눈이 녹으면 열린다고 한다. 알고 보니 지난 4월만 해도 눈사태가 나서 도로 일부가 막혔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 비앤비에 올라가면 눈사태 경고등이 있고, 도로 곳곳에는 나무들이 모두 한쪽으로 휩쓸려 있고 도로가의 레일이 쓸려나간 곳들을 볼 수 있다.

해처 패스 (Hatcher Pass)를 따라 올라가면 있는 비앤비.
아늑한 비앤비 안. 추워서 겨울 파카를 꺼내 입었다. 럼이 들어간 사이다는 따스하고 달달하다.

예정에 없었던 해쳐 패스로의 드라이빙 이후, 우리는 아무렇게나 찍어도 작품이 되는 것 같은 1번 고속도로 (글렌 하이웨이, the Glenn Highway)를 지나 예정에 없던 톨소나에서 차가운 빗속의 캠핑을 하게 된다.

톨소나와 체나 온천은 다음 글에서 계속.


The Sourdough 사진 출처: Otto Daniel Goetz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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