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낭푼밥상'
제주는 한반도에 속하나, 육지와는 다른 섬 환경으로 인해 독특한 생활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섬'이 갖고 있는 '고립'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중앙 정계에서 좌천되거나 큰 죄를 지은 이는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제주로 유배를 보냈으며, 특히 임진왜란을 전후한 1600년대에는 극심한 생활고와 고역으로 출륙(出陸)하는 이들을 봉쇄하기 위해 인조 7년(1625년)부터 순조 25년(1825년)까지 약 200여 년 동안 출륙금지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조선의 중앙정부 입장에선, 당시 제주는 일본과 중국을 잇는 거점 지역이자 명나라와의 말(馬) 무역의 주요 생산기지였으니 제주도의 인구 감소는 특산물의 진상, 군액의 축소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출륙금지령이 효과적인 유민 정책이었지만, 제주도민들에게는 육지와의 정치적 · 행정적 단절로 인한 '고립'을 의미하였다.
더군다나 화산섬 현무암 지형으로 말미암아 땅마저 척박하니 그야말로 제주는 자력갱생(自力更生)할 수밖에 없었다. 외부의 위협이 강해지면 내부의 결속은 강해진다고 했던가!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말미암아 제주도는 육지에서 온 사람들을 불신하고, 제주인들만의 <공동체 결속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제주의 공동체 생활 문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바로 <괸당>이다.
'괸당'은 친인척을 뜻하는 제주도의 사투리로 서로서로 돌보아주는 가까운 혈족부터 먼 친척을 두루 일컫는데, 그 먼 친척의 범위에는 지연과 학연, 친분까지 아울러 포함된다. 그러다 보니 제주에선 남자와 여자를 가라지 않고 ‘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을 <삼촌>이라 칭한다.
제주도의 생활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단어가 '괸당’이라면 식문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낭푼밥상>이다. ‘낭푼’은 나무의 제주어인 ‘낭’과 아가리가 넓고 밑이 좁은 ‘푼주’의 합성어로 집안의 대소사뿐 아니라 바다에 삶을 바친 해녀들의 바쁜 일상이 만들어낸 식(食) 문화이다. 낭푼은 밥상의 중심에 밥과 해산물 등을 가득 담은 낭푼 그릇을 놓고 식구수대로 수저를 꽂아 먹던 <밥상 공동체>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장 제주스러운 향토음식점의 상호로 <낭푼밥상> 이상 가는 이름은 없다. 제주시 연동 골목에 자리 잡은 이 식당은 1호 제주 향토음식명인인 김지순 님과 아들인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이 함께 꾸려나가는 공간이다. 반갑게도 2021년 3월 '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란 단체에서 아시아 20개 국가, 49개 도시 전통 음식점 중 77곳을 'Essence Of Asia'로 선정했는데 제주의 향토 음식을 발굴하고 기록해나가는 이 식당이 포함되었다는 낭보(朗報)도 있다.
오늘 받은 밥상에서 특별히 따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몸국>과 별도로 주문한 <순대>, 그리고 정식 메뉴에 함께 나오는 <괴기반>이다.
이 식당에선 돼지 육수에 모자반을 넣고 끓여낸 몸국을 ‘가문잔치국’이라 하는데 가문잔치는 제주의 전통 혼례 잔치를 의미한다. 제주의 혼례 문화는 식을 올리기 전 길게는 5일, 짧게는 3일간 친인척과 이웃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는데 손님을 본격적으로 치르기 전 가문(家門)의 어른들을 모시고 하는 잔치라 그리 불렀다. 며칠에 걸쳐 끓이고 끓이는 잔치 음식인 몸국은 소금 간을 따로 하지 않았기에 <다져낸 신김치>로 직접 간을 해서 먹는 것이 제주의 전통 방식이다.
순대는 제주어로 <수애>라 하는데, 제주의 순대는 채소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대신 선지를 주로 사용했기에 호남의 그것과 묘하게 맞닿아있다. 제주는 물이 귀해 쌀이 귀할 뿐 채소는 나름 조달이 용이함에도 불구하고 순대 고명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일상식이 아닌 관혼상제 잔치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제주의 잔치 기간은 유독 길기에 이 기간 동안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려면 수분기가 없이 만들어야 했기에 다양한 재료를 오히려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주도 수애는 소금이나 막장 대신 <초간장>을 찍어 먹는 것도 기억해둬야 할 대목이다.
괴기반은 잔치나 초상을 치를 때 하객 · 문상객 접대상에 올리던 1인분의 고기 접시를 의미한다. 넓적하게 썰어놓은 돼지고기 석점, 수애 한점, 두부 한 조각을 담아낸 괴기반 역시 제주의 <공동체 정신>이 담겨 있다.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음식을 접시에 일정하게 배분해놓고 남녀노소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한 사람에게 한 접시씩 나누어 준다. 이것은 잔치에서나 먹을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을 행사에 참석한 모두와 공평하게 나누려는 제주인들의 의식을 반영한 음식 문화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간 제주에서 고기국수와 흑돼지구이, 돔베고기를 먹고 제주 음식을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한발 더 나아가 제주의 오름과 바다를 보며 먹은 것들이 제주만의 감성이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삼시세끼 먹는 음식이지만, 그래서 음식에 대한 배움 역시 끝이 없다. 제주의 속살을 음식을 통해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식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