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고분옥할머니순두부
동해의 이름난 관광도시, 강릉의 대표적인 음식은 의외로 해산물이 아니라 순두부이다. 특정 음식을 테마로 예닐곱 집이 골목에 자리 잡아 성업하는 경우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초당두부마을>처럼 동네 하나가 통째로 한 가지 음식으로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당장 떠오르는 곳이 양양의 송천떡마을, 속초의 아바이마을 정도이다.
수령이 백 년은 넘을법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초당마을에서 시작된 두부의 역사는 조선 중기 문신이자 허난설헌과 허균의 부친이었던 허엽(1517~1580)이 집 앞 샘물로 콩물을 끓이고, 바닷물로 간을 맞춰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 맛이 일품이라 본인의 호인 <초당>으로 이름을 붙였고, 두부를 만든 샘물이 있던 자리가 바로 지금의 초당동이다.
두부의 시작은 조선시대 허엽이 했다지만, 본격적으로 초당마을에서 두부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를 전후해서이다.
일종의 나비효과랄까. 강릉 초당두부가 유명해지게 된 배경의 첫번째 도미노 조각은 거창하게도 <이념>과 <한국전쟁>이다.
해방 전 사회주의 성향의 <몽양 여운형> 선생께서 이 동네 초당의숙이라는 야학의 초빙교사로 1년여간 계셨었고, 해방 이후 좌익 성향으로 분류된 제자들이 사상적 낙인이 찍혀 월북하거나 빨치산으로 오인받아 죽어나가니 살길이 막막해진 마을 아녀자들이 생업을 위해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 아예 식당을 차려 살림이 나아지니 1980년대 후반부터 초당동에 하나 둘 식당이 늘어나며 현재 20여곳의 두부 식당이 성업 중이다.
초당마을의 두부는 새벽 어스름 무렵 할머니들이 직접 만드신다. 식당 장사는 자식들이 하더라도 여전히 두부를 만드는 것은 긴 세월 동안 가마솥 장작불을 지키신 할머니들이다. 그래서 여기 식당들의 상호에 할머니가 들어간 곳이 서넛 된다.
강릉이 고향인 회사 선배의 추천으로 방문한 식당 역시 그래서 상호가 <고분옥할머니순두부>이다. 고분옥 할머니께서 시어머니로부터 두부 제조법을 전수받아 25세부터 40여 년간 두부를 만들어 판매만 하시다가 식당을 개업한 것이 1994년 경이다. 식당의 업력은 30여 년이 채 되지 못했으나, 가업의 기준으로 보자면 벌써 3대째 이어지는 곳이다.
일반 두부가 염분이 압축된 물을 간수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염전이 없는 강릉에서는 동해 바닷물을 단순히 정제하여 간수로 사용한다. 그래서 초당의 순두부는 몽글몽글 꽃처럼 피어난 양떼구름같다. 다른 지역 두부와는 생김새부터 다른 초당마을 순두부는 모두부로 틀을 갖추기 전이라는 의미를 담아 <초(初)두부>로 불린다.
초당두부 역시 온고지신하여 두부젤라또, 두부탕수, 두부샐러드, 짬뽕순두부 등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춰 현대화되었다지만, 그래도 순수한 원형의 맛을 보기 위해선 초두부와 두부찌개를 먹어보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