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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Aug 20. 2024

태백 광부들의 음식, 물닭갈비 이야기

강원도 태백시 시장남1길 7-1 「김서방네 닭갈비」

그 어느 때보다도 불볕 폭염으로 한창인 올해, 유일하게 열대야로부터 자유로운 도시가 바로 강원도 태백시이다.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인 한반도에서 가장 동쪽 높은 곳에 자리한 태백시는 '남쪽의 백두산'이라 불리는 태백산과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을 품은 땅이다. 4대강 가운데 두 강이 한 고장에서 발원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매년 7월말 태백시에서 개최하는 한강·낙동강 발원지 축제

태백산과 백두대간의 산하가 태백 땅의 근간이라면, 태백 사람들은 오랜 시간 그 땅이 선물한 석탄에 의지했다. 한때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640만 t을 생산했으며 정부가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펴기 전까지 약 50여개 광산이 태백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최대 탄전 지대에 위치하여 석탄 산업의 발전과 흥망성쇠를 함께 한 태백시에는 다른 지역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음식이 있으니 바로 「물닭갈비」이다.


춘천식 닭갈비 (볶음) vs 태백식 물닭갈비 (전골)

춘천의 닭갈비는 인기를 더해 1990년대 초반 전국구 음식으로 발돋움하였지만, 태백의 물닭갈비는 여전히 지역 내 향토음식으로 소박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음식을 경험하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돌아 태백에 당도하였다.


특정 지역에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음식이 성했다면 특유의 지역성과 향토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간단한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물닭갈비는 '가난한 탄광 노동자들이 양을 불리기 위해 각종 야채와 물을 붓고 전골로 끓여 먹던 음식이다'라는 「가설」을 세워봤다.


개도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번성했던 태백 탄광마을 벽화 (상장동)

실제 춘천 닭갈비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고, 산나물 채취가 용이한 지역이라 '가난한 탄광 노동자들의 안성맞춤 음식'이라 생각했는데 석탄박물관을 관람하고 나니 비록 근무 환경은 고되었을지언정 목숨 내놓고 일하는 광부의 월급이 적지 않았던 데다 과거에는 개도 돈을 물고 다녔을 정도로 지역 경기가 좋았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보아 「가난한」과 「양을 불리기 위한」이라는 가설은 폐하고, 「어떤 필요」에 의해 음식이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가설로 변경하였다.


탄광 사고 동료를 구하러 입갱하는 구조대 (태백 석탄박물관 촬영)

막장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붕락사고, 갱내 물통이 터지는 출수사고, 탄층에서 유독가스가 새어 나오는 가스사고, 갱내에서 불이 나는 화재사고 그리고 각종 안전사고 등등. 탄광은 유난히 사고가 많았다.


이렇게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탄을  캐야 하는 막장 광부와 가족들에게는 전해 내려 오는 「속신」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갱내 작업 도중 마신 '분진은 막걸리로 씻어버려야 한다'라는 것이다.


탄광촌의 금기 사항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석탄의 시대’ 기획전)

속신이란 과학적 검증은 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민간에서 공유되어 온 관념을 의미하는데 이를테면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타난다', '시험 당일 미역국을 먹으면 시험에 미끄러진다'라는 믿음이 대표적이다.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 (태백 석탄박물관 촬영)

사건 사고에 대한 공포를 곁에 두고 살았던 광부들의 대표적인 속신은 죽음의 의미가 담긴 4(死) 자에 대한 내용이 유독 많다. 광부의 도시락을 준비할 때 4 주걱을 담지 않으려 3 주걱이나 5 주걱으로 밥을 펐고 , 갱내 작업장 번호를 매길 때에도 4자는 붙이지 아니했다.


또한 매일 작업복과 출퇴근 옷을 따로 갈아입는 광부이기에 옷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의복은 신체의 연장이라 생각하여 출근길 옷이 찢어지거나 어디 걸리기라도 하면 신체가 훼손되는 사고를 당할까 두려워 입갱(入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분진을 몸에서 배출하기 위해서라도 광부들은 작업조끼리 삼삼오오 밤마다 막걸리를 마셨다고 하는데, 이 당시 광부들이 즐겨 먹었던 안주가 바로 「물닭갈비」이다. 


쑥갓과 미나리 등이 푸짐하게 올라간 태백의 물닭갈비

실제 분진을 제거하는데 막걸리가 유효하다는 것은 속신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물닭갈비에 잔뜩 넣은 푸짐한 야채는 강력한 섬유질 음식으로 혈관으로 파고드는 분진을 쓸어내리는 역할을 했더랬다. 게다가 석탄가루를 많이 마셔서 칼칼해진 목을 가라앉히기 위해선 아무래도 볶음 요리보다는 국물 요리가 훨씬 더 좋았을 거라는 건 당연한 이야기!


태백 물닭갈비는 1980년대 이르러 전성기를 맞는다. 황지동 여관 골목에 전문 음식점이 하나 둘 생기면서 군락을 이루기 시작했다. 광부들의 요구에 따라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음식인 데다 당시 인터넷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기이니 원조가 어디인지를 알 수 없으나 당시 송이분식, 황가네, 승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998년 개업한 김서방네 닭갈비 전경과 메뉴판

그러다 1987년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폐광이 이뤄졌고, 일자리를 잃은 탄광도시 태백의 인구는 빠르게 감소하며 물닭갈비의 영화 역시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지금은 태백 물닭갈비의 원조격으로 불리던 가게 세 곳은 문을 닫았고, '김서방네 닭갈비(1998년 개업)'이 현지인들에게 가장 오래된 물닭갈비 식당이라  인정받고 있다.


이미 태백의 쇠락이 한참 진행된 후에 개업한 식당이긴 하나, 그래도 물닭갈비의 명맥을 이어받아 「수요미식회」에도 소개된 '김서방네 닭갈비'를 방문하여 물닭갈비 3인분에 우동과 쫄면 사리를 각각 주문했다.

우동 사리를 넣고 끓여낸 물닭갈비

재미있는 것은 주문방식이다.

춘천식 닭갈비는 메인 메뉴를 충분히 즐긴 후 사리를 추가하는 방식이지만, 태백식 물닭갈비는 애초 사리를 추가하여 주문하는 것이 특이하다. 아마도 탄광에서 나와 식사 겸 반주를 위한 자리였을 테니 우동 사리 등으로 우선 급한 허기를 달랜 광부들의 주문 방식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닭갈비를 먹고 주문한 마무리 볶음밥

무쇠로 만든 움푹 패인 철판에 푸짐하게 나온 떡, 파, 미나리, 쑥갓, 배추 등을 먹다보면 토막낸 닭고기가 쫄깃하게 익어간다. 물닭갈비에 나온 건더기를 얼추 먹고 나서 볶음밥은 주문하면 걸쭉한 국물에 밥을 넣어 김가루를 솔솔 뿌려 밥알이 탱탱해질 때까지 주걱으로 슥슥 볶아주는데 이게 참 별미이다. 갖은 양념과 음식 재료, 밥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한 숟가락 크게 떠 김치 한쪽을 올려 맛보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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