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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부장님은 고통도 없으셔

by 송기연

No Pain, No Gain.


만고의 진리인 이 말은 여러 곳에서 입증된다.

뭔가 투자가 있어야 결과도 있지 않은가. 많은 방법론이 있고 비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꾸준한 노력이 있으면 결과도 따라온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살을 빼거나 근육을 키우거나 멋진 몸매를 원한다면 많은 노력과 약간(?)의 고통이 필요하다. 공짜로 쉽게 얻어지는 것은 나이와 뱃살 정도 아니겠는가. 보자 보자.. 또 뭐가 있으려나?




크로스핏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기억해 보면 남자들은 모두 괴물로 보였다.

초보라서 혼자 별도로 운동해야 했다. 조금 지나서 쭌코가 여자 회원들 무리에 나를 포함시켰다. 여자라고 해서 남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운동 수행력을 보였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어떻게 여자들보다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 아주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일 나오는 그날의 WOD는 무게와 횟수가 지정되는 Rxd와 Scale 버전으로 나뉜다. Rxd는 남녀로 나뉘는데 나의 최대치는 여자 Rxd다. WOD의 종류에 따라 해 볼 만한 여자 Rxd가 있고, 어떤 것은 혀를 내두를 정도 수준으로 나오기도 한다. 지금이야 이런 생각을 해볼 수는 있지만 운동을 처음 시작할 즈음에는 여자 Rxd는 공상과학(SF)의 영역이었다.


그럼에도 한 번 어떻게 비벼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K의 어깨를 보고 1초 만에 눈 녹듯 사라졌다.

다음에 소개할 역도 선수 출신의 H도 마찬가지지만, K의 모습은 무조건 운동선수 출신이거나 체대 쪽이었다. 앞서 말한 1초도 사실 긴 시간이었다. 이후 친해지면서 알게 된 의외의 사실은 K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틀렸음을 알게 했다. 사실 K는 부산 최고의 국립대학에서 공부한 인재고, 대기업에 근무 중인 부장님이었다. 운동과는 전혀 관련은 없지만 운동 자체를 사랑했다, 아니 그냥 생활이었다.


현정-1.jpg 저 모습을 라이브로 본다고 생각해 보시라


K도 처음부터 저런 멋진 어깨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싶다. K는 남편인 J와 함께 운동한다. J는 크로스핏 코치 출신으로 현직 소방관이다. 여기에서 알게 된 사실 중에 우리나라 소방관과 경찰관의 체력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다. 부부인 K와 J는 부창부수의 운동 DNA를 가지고 있다. 아주 나이스한 부부다.


K가 지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어떤 WOD는 끝나고 나면 숙련된 사람들도 크게 대자로 뻗는다. 하지만 K는 어지간해서는 지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언젠가 한 번은 H와 J가 팀으로 운동을 했었다. 그날의 WOD는 Team of 2라고 해서, 두 명이 한 팀으로 정해진 종류의 수량을 채워나가는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Sit up(누웠다가 상체만 들어서 앉기)이었던 것 같다. WOD를 진행하다 보면 누구라도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그래서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거나 거칠게 숨을 내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H와 함께하는 K는 달랐다. 속도가 전혀 줄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H와 아주 친한 K지만 운동을 할 때에는 웃음기가 없어진다. 후반으로 갈수록 K의 Sit up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던 H가 크게 웃으면서 절규하듯 말했다.



"아니, 언니는 도대체 고통이라는 걸 몰라요??"



H의 이 말에 다른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세상에 고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K도 분명히 힘들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임계량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이제는 많이 친해진 K와는 한 때 이런 농담도 주고받았다. 나도 내 기준에서는 참 열심히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오빠는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요?"


"그러는 넌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그러게 말이다.

크로스핏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분명히 힘들고,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무게와 숫자 채우는 게 뭐라고 기를 쓰고, 정해진 시간 내에 끝내려고 아득바득이다. 오늘도 로잉머신에 칼로리를 체크해 가면서 월볼(Wall Ball)을 벽에 던져 올렸다. 어쨌든 정해진 시간에 12초를 남기고 끝냈다. Team of 2는 WOD를 함께 하는 파트너와의 호흡도 중요하다. K와 함께 Team이 된다는 것은 그날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K의 운동을 향한 열정은 놀라운 수준이다. 어깨가 조금 불편하면 하체운동을 하러 온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쉴 법도 한데 K는 멈추지 않는다.




사실 대기업을 다닌다는 것은 끝없는 스트레스와 압박의 연속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도 첫 직장이 대우자동차 디자인실에서 시작했지만 채 6년을 채우지 못했다. K는 의료기기 영업을 하는 대기업의 부장님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수십억 원의 실적을 올리는 능력자다. 대기업에서 부장을 한다는 것과 실적을 매년 평가받아야 하는 업종이라고 하면 그 압박감은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동으로 그 스트레스를 풀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운동은 즐거움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운동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고 삶을 살아내기 위한 최후의 보루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목적으로 운동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에서 신체적인 힘이 빠져나감을 느낀다. 건강하지 않은 신체에서 강인한 정신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운동은, 특히 크로스핏은 그런 점에서는 최적화된 종목이다.

주어진 목표(WOD)를 수행하고 난 뒤에 오는 체력적 쾌감 못지않은 성취감이 있다. K 역시 직장에서, 가정에서, 삶에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있겠는가. 그가 선택한 운동은 좋은 판단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선택한 이 과거의 판단은 현재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적어도 지금은 체력이 부족해서 정신력이 약해지는 경우는 없다. 다른 외부 요인들이 많이 작용하기는 한다. 아예 없기야 하겠는가. 아무튼, K의 오늘은 과거에 K가 감당했던 Pain들의 결과다.



K의 운동열정과 함께 할 수 있어 참 좋은 쭌코의 오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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