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의 부담에 관한 이야기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박해일 분)가 제자에게 내비친 대사입니다. 나이와 창의성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디자인은 창의적인 직업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맞는 말입니다.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거나 혹은 개선을 하려면 창의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세심하게 들어가서 본다면, 창의적 성향으로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성향이 있고, 산발적으로 펼쳐진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데 최적화된 디자이너들도 있습니다. 다 성향의 차이면서, 프로젝트 단계 별 필요한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통상 젊은수록 창의적이라고 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어린아이일수록 더욱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창의성이라는 것의 내용입니다. 어린아이들은 경험이 적다 보니 발상하는 내용들이 엉뚱에 가까운 창의입니다. 물론, 이런 방식 역시 아이디어 초기단계에서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으로 오게 되면 이른바 '한정된 자원'이라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자원 내에서의 한정된 창의가 필요합니다. 순수한 아이디어 차원에서만 볼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좀 오래된 얘기입니다. 어느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디자인 관련 특강이 있었는데, 중소기업 대표님들이 많이 참석하셨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플로어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강연자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작은 제조업을 하는 중소기업 대표입니다. 신제품을 하나 개발도 하고, 회사 내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고 싶어서 디자인 전공 신입사원을 뽑을까, 아니면 외주로 의뢰할까 고민 중입니다"
이 말을 들은 강연자(당시 탠저린 이돈태 디자이너셨습니다)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신입직원에게 기대하는 게 젊으니까 회사가 못하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쏟아내길 기대하시나요?"
젊다고 모두 창의적이지 않을 수 있고,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에 창의성을 그 신입사원에게만 기대한다면 너무 부담스러워서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식의 답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루키 디자이너들은 대개 창의적이라고 하는 생각은 그야말로 고정관념일 수 있습니다. 학생 때 과제나 공모전 정도 수준의 창의성이 아닌 실전에서, 창의성과 책임감을 요구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실전에서의 창의성은 경험을 수반합니다. 적절한 현실성과 창의성을 통한 혁신을 추구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가장 좋은 조합은 노련한 숙련자와 파트너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전에 자동차 디자인(스타일링)에서는 그런 조합을 많이 가졌습니다. 젊고 혁신적인 스타일리스트와 오랜 경험의 시니어 모델러가 그것입니다. 물론, 이런 공식 역시도 아날로그 방식의 디자인 프로세스가 한창이던 때의 논리입니다. 이제는 오랜 경험을 가진 모델러를 컴퓨터 기술이 대체해서 미리 검토하는 시대가 되었지요. 기술발전의 속도는 놀랍습니다.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해야 하는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창의성과 현실의 그 아슬아슬한 적정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도 과하지 않은 선이어야 하지만, 그 선도 탄력적입니다. 한정된 자원 내에서 말입니다.
나이와 창의성은 반드시 반비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디자인도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나이가 변수가 아니라 해당되는 사람 자체가 변수입니다. 성향이나 성격도 저마다 다르듯이 창의성 역시 사람마다 달라집니다. 그리고, 루키일수록 창의성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 안긴다면, 부담이 책임을 회피할지도 모릅니다. 시니어의 많은 경륜이 뒷받침되는 루키의 과감한 창의성, 이런 조합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