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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물이면서 같은 짐승인가]

우리는 정말 서로 다른 존재일까, 아니면 같은 본능의 거울일까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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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문득 마주친 문장이 있다. “다른 동물이면서 같은 짐승인가.” 처음엔 언어유희처럼 가볍게 보였지만, 그 안에는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스스로를 향한 은밀한 자각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고 말하지만, 실은 같은 본능과 유혹 앞에서 비슷하게 흔들리는 존재 아닐까.


겉으로는 삶의 방식도, 감정의 결도, 취향도 전혀 다르지만 결국 안에 흐르는 욕망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타인을 향해 던진 판단이 어느 순간 거울처럼 나를 비출 때, 우리는 문득 멈칫하게 된다. 그것은 부끄러움이기도 하고, 어쩌면 묘한 위안이기도 하다.


그럴 때 떠오른다. ‘동물’과 ‘짐승’이라는 표현이 인간에게 쓰일 때의 묘한 결을. 우리는 흔히 본능을 이기지 못하거나 이성적으로 부족해 보일 때 ‘동물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윤리와 도덕, 최소한의 인내심마저 무너졌을 때는 ‘짐승 같다’고 부른다. 둘 다 인간을 낮추는 말이지만, 그 속도와 온도는 다르다. 동물에는 아직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고, 짐승에는 선을 넘어버린 단절이 있다.


이런 말들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 시작점이 비꼼이나 우월감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완전히 현명하지 않고, 누구도 완전히 무지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에게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고, 나 자신에게는 그만큼의 관용을 허락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판단의 순간에, 가끔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 다른 동물처럼 보였던 이가 사실은 나와 같은 짐승이었다는 것.

우리는 서로를 비추는, 결코 완전히 다르지 않은 거울들이다.
우리는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 같은 약점과 그림자를 안고 있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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