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의 끄적끄적
이별이라는 건 누구나 경험하는 부분이다. 그게 반려 동물일 수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별이란 걸 하기 싫어!!"라고 한다고 해도 안 하고 안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경험하되, 그것을 조금은 담담하고 용기 있게 이겨내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가정을 해보자, 나는 오늘 내가 15년 넘게 키운 반려 동물이 죽었다. 그렇다면 정말 슬플 것이고 화자 또한 초2 때부터 키웠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 너무 슬펐다. 그래서 그 허전한 기분을 어떻게 주체를 못 하고 울면서 방황을 많이 했었다.
"누구는 유난이다."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정말 내 가족을 잃었던 심정이랑 비슷했다. 그래서 잠깐 키웠던 고슴도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때 당시의 슬픔보다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된다면 나는 어찌할까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별을 마주할 때 미리 준비를 하지 않는다. 이별 또한 이 사람과 언제 이별을 할 거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이별의 순간이 올 때 우린 그 순간을 못 참고 같이 유명을 달리하는 선택도 한다. 예시로 유명 연예인이 죽었을 때가 그 예이다.
우린 그런 경우에 하는 생각은 '정말 안타깝다.' 아니면 '정말 힘들었나 봐.'라고 공감을 하는 선에서 끝을 낸다. 그들을 잃은 상심으로 같이 따라 죽는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팬 입장에서는 너무 상심이 크게 느끼면 오히려 같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린 우리 죽을 때까지 어려 이별의 상심을 느끼다 비로소 우리의 죽음으로 이별의 종착점에 서게 된다. 만약 그럴 때가 온다면 우린 어떤 방식으로 그 종착점에 서야 할지 한 번 생각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죽기 싫다며 떼쓰는 것만큼 인상 찌푸려지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던 우리는 슬슬 우리의 이별의 종착점을 한 번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한다면 정작 이별의 종착점이 갑자기 찾아온다면 갑작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보다 좀 더 그것을 담담하고 용기 있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