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 명작 오마주 시리즈 (테스)
“그 사람이 저를 사랑했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 감정이 순수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 감정 때문에 제 인생이 무너졌어요.
삭제해 주세요.
그 사람이 저를 사랑하던 감정—그 감정만.”
가온은 그녀를 바라봤다.
소은의 말투엔 분노가 없었다.
다만, 단단한 결심과—
깊게 잠긴 감정 하나가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AI 분석: 라일
“대상자(전 연인)의 감정은 ‘사랑’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 생성 당시, 의뢰자의 감정 상태와 강압적 상황이 병행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AI 분석: 카일
“해당 감정은 비대칭적이며,
의뢰자가 감정을 수용할 준비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주입된 감정입니다.
감정 동기 결핍 상태에서 생성된 ‘오염된 감정’ 유형입니다.”
“그는 날 좋아했어요.
처음엔… 저도 그랬죠.
근데 그 사람은—제가 아닌 자기가 원하는 저를 사랑한 거예요.
제가 피곤하다고 하면 ‘괜찮아, 네 안엔 밝은 면이 있어.’
제가 화내면 ‘그건 네 진짜 감정이 아니야.’
그 사람은 제가 순수하다고 믿었어요.
근데… 그건 그 사람이 만든 순수였죠.”
소은은 말을 멈췄다.
“그 감정을 지우고 싶은 이유요?
전… 그 감정 안에서 계속 나를 탓했거든요.
“그 사람은 늘 저를 배려한다고 말했어요.
근데 그 배려는 선택지가 아니라 명령이었어요.
‘너 이 색 좋아하지?’ 하고 묻기 전에 이미 선물을 사 왔고,
‘오늘은 조용히 쉬자’며 제가 말할 기회도 없이 일정을 바꿨어요.
제가 감정을 드러내면 ‘그건 네 본모습이 아니야’라고 했고,
제가 침묵하면 ‘역시 넌 순수해’라고 단정했어요.
결국, 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 사람의 감정 안에, 저는 없었거든요.
그 사람은 저를 사랑했지만—
그 감정은, 제가 아니라 자기가 만든 저를 향한 거였어요.
그리고 그 감정 안에서 저는 점점 무너졌어요.
왜 내가 더 말하지 않았을까.
왜 싫다고 분명하게 하지 않았을까.
왜 그 사람 말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그 사람을 아직도 조금은 이해하려고 하는지.”
“전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어요.
근데 세상이, 그 사람이,
그 감정이—
저를 가만히 두지 않았어요.”
담당자: 가온
보조 분석: 라일 / 카일
로그 메모:
‘순수’는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타인의 기대에 맞춰 강요된 감정일 수 있다.
세상은 그녀를 순수하다고 불렀고,
그 감정을 아름답다고 칭송했지만—
그 감정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감정은 동의 없이 주입될 수 없다.
감정에도, 합의가 필요하다.
나는 조용히 살아가고 싶었다.
누구의 감정도, 누구의 기대도 없이.
그냥 나로서.
그런데 세상은,
내 감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네가 순수하다고,
네가 착하다고,
네가 원래 그런 애였다고—
나에게 설명했다.
그 감정은 아름답지 않았다.
그 감정은… 폭력이었다.
나는 이제
내 감정을
내가 선택하고 싶다.
세상이 내게 지운 감정들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나의 감정으로, 나를 살고 싶다.
이 이야기는 ‘순수’에 관한 감정 로그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순수는,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건 너무 자주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되었고,
너무 오래 여성들에게 강요된 감정이었습니다.
『테스』는 스스로를 탓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녀는 가해자의 감정을 끝내 자기 책임으로 끌어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그 감정을 ‘비극’이라 부르며,
가장 폭력적인 형태로 ‘순수’를 칭송합니다.
‘사랑’이라는 말로 폭력이 포장될 때,
우리는 감정의 진짜 주인을 잃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그 감정을, 다시 자기 자신에게 되돌려주는 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