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보관소 – 감정 불인증 로그》

왜 당신은 슬프지 않나요? -명작 오마주 시리즈 ( 이방인)

by J이렌



감정 의뢰자: 정무열 (32세, 보험 설계사)

감정 요청: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슬프지 않았어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무 느낌도 없었어요.
그게… 잘못된 건가요?”

가온은 의뢰서를 읽으며 고개를 들었다.
‘감정 없음’은 종종 시스템 오류나 억압으로 인한 것이지만,
무열의 로그는 달랐다.

그의 감정망은 조용했다.
고요했고, 명확했으며, 결핍이 아닌 비동조 상태였다.


AI 분석 결과

라일의 분석
“해당 감정망은 정상입니다.
슬픔, 후회, 죄책감 등의 감정 신호는 약하지만 존재하며,
반응은 비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단지—사회적으로 기대되는 감정의 표현 방식과 다를 뿐입니다.”


카일의 분석
“이 감정망은 감정 불인증 상태로 판단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있음에도,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감정을 의심하는 상태입니다.”

무열은 덤덤하게 말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날, 햇빛이 너무 강했어요.
병실 바닥이 너무 뜨겁고, 사람들 발소리가 거슬리고,
제 몸에 땀이 끈적였어요.
근데… 아무도 그 얘긴 안 하더라고요.
‘슬프냐’는 말만 계속 들렸어요.”

“저는 엄마를 싫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날, 슬퍼야 했던 이유를 못 찾았어요.
저는—그냥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을 뿐이에요.”


며칠 뒤, 무열은 감정 로그 열람 결과를 확인하고
잠시 침묵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전 고장 난 게 아닌 거네요?”

가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단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 감정이 슬픔이든 무감정이든—그건 감정 그 자체입니다.”


[감정 로그 상태: 확인 완료 / 삭제 불요]

담당자: 가온
보조 분석: 라일 / 카일

로그 메모:
감정은 느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감정은 있다.

그리고 어떤 감정은,
세상이 기대하는 방식과 너무 달라
존재 자체가 무효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슬퍼하지 않았지만,
그는 ‘존재하고’ 있었다.


� 이모션 크레딧 | 슬픔이 없다는 죄

슬픔이 없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본다.

그날 햇빛이 너무 강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처럼 본다.

감정은
세상이 허락한 방식으로만
느껴야 하는 걸까?

나는
슬프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슬픔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 슬픔이
내 방식으로 존재했을 뿐이다.


감정 불인증 로그 – 이방인 오마주 작가의 말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세상이 기대하는 방식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 이야기는 감정의 부재에 대한 로그가 아닙니다.
감정을 스스로 의심하게 되는 감정의 부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왜 울지 않느냐’는 질문 앞에서
슬퍼하지 못한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세상이 감정을 너무 좁게 정의한 걸까—
그 물음은 곧,
우리가 얼마나 쉽게 감정을 무효화당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감정은 조용하지만 존재합니다.
이 감정을 인정받는 순간, 우리는 다시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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