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감정은 죽어서도 나를 따라왔다-오마주: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사랑은 끝났지만,
그 감정을 느꼈던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그 사람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 감정 속에 살고 있어요.
그녀를 미워했고, 사랑했고, 버렸고, 기다렸어요.
그 사람을 내 마음에서 놓아달라고,
몇 번이나 이곳에 요청했죠.
근데 왜…
왜 아직도 이 감정이 남아 있죠?”
가온은 그의 로그를 열람했다.
이현승은 1년 전에도 동일한 감정 삭제 요청을 남겼다.
그때의 로그는 ‘지속적 분노와 미련’으로 분류되었고, 삭제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번 로그는 다르다.
삭제된 줄 알았던 감정들이
다시 피어났다.
더 깊어지고, 더 조용해졌으며—더 끈질겨졌다.
라일의 분석
“해당 감정은 기존 삭제 후 잔여 정서 반응으로 남아 있다가,
의뢰자의 장기 기억 트리거에 의해 재구성됨.
특징적으로, 감정의 구조가 ‘사랑/분노/그리움/혐오’가 뒤섞인 복합감정 잔존체입니다.”
카일의 분석
“삭제 불가 유형에 해당.
해당 감정은 기억과 감정이 얽혀있는 ‘자아 핵심 감정 구조’에 연결되어 있음.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그 감정이 이미 그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저를 무너뜨렸어요.”
현승은 천천히 말했다.
“제 자존심을 망가뜨렸고, 제 자리를 흔들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그를…
사랑했어요.
그게… 너무 수치스럽고, 동시에 너무 절실했어요.”
“그녀가 죽었을 때,
속으로 생각했어요.
‘이제야 끝났다.’
그런데 왜,
지금도 문득 그 사람과 말싸움하는 꿈을 꾸는 걸까요.
왜 아직도… 이 감정이 내 안에 살아 있나요?”
담당자: 가온
보조 분석: 라일 / 카일
로그 메모:
사랑은 끝났지만,
그 감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사라졌지만,
그 감정을 느꼈던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는 지금,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그의 일부다.
그 감정은 나를 다치게 했다.
그 사람도, 나도,
서로를 망가뜨리며 사랑했다.
그녀가 사라진 지금,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가 남긴 감정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다.
사랑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감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 감정은
죽어서도 나를 따라올 것이다.
『폭풍의 언덕』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달콤하지 않고, 치명적이며,
사람을 무너뜨리고도 남아 있는 감정입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서로를 갈망하지만,
그 사랑은 끝내 완성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죽은 후에도 남아,
돌처럼 무겁게,
바람처럼 날카롭게
삶의 뒤편을 떠돕니다.
이번 감정 로그의 주인공도
그 감정을 끝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울 수 없다는 건,
그 감정이 사랑이어서가 아니라
그 감정을 통해
‘내가 나였던 순간’이 존재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로그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지나온 ‘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