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와 한국의 가족문화
시어머님이 살아계셨다면 오늘이 백세 생신날이다. 모든 서구인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캐나다의 시댁 형제들은 부모님의 돌아가신 날 보다는 생신날을 추억한다. 시부모님은 같은 해에 6개월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4살 연상이셨는데, 아버님은 알츠하이머를 앓으시다 증세가 갑자기 나빠지며 89세의 연세로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6개월 후에 93세의 연세로 돌아가셨다. 살아생전 금슬이 대단히 좋으셨다는데, 남편은 두 분이 언성을 높이는 경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비교적 장수하신 시부모님에 반해 나의 친정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일찍 돌아가셨다. 지금 살아계신다 해도 엄마는 78세, 아버지는 82세 밖에 되지 않는 연세이다.
독신주의는 아니었지만 일찌기 내 성향을 파악하고 있던 나는 배우자 만나기 쉽지 않은 성격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나름의 판단으로 결혼에는 초연한 마음으로 살았다. 부모님이 일찍 결혼을 하셔서 나를 일찍 낳으셨기 때문에 친구들의 부모님에 비해 젊으셨다. 당연스레 나는 부모님과 더불어 살며 같이 늙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두 분 모두 갑작스런 병으로 한참 정정하셔야 할 연세에 세상을 버리셨다. 맏이였던 나는 평생 기댈 기둥이라 생각했던 부모님의 타계에 크게 상심했다. 다행히 동생들은 모두 가정을 꾸려 잘 살아갔지만 남동생들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섭섭한 일도, 갈등도 겪으며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그러다 친구로 부터 남편을 소개받았다. 남편은 캐나다인이다. 만난 그 해, 나는 캐나다의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 때는 결혼 전이었지만 결혼을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시어머님은 한국이 좋다고 매년 방학이면 한국을 가는 아들을 보시며 "저러다 한국 여자와 결혼하겠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된 셈이다.
2013년 어르신들을 뵈며 나는 두 분이 오래 사시기를 바랬다. 시어른들을 뵌 첫 순간부터 나는 두 분이 좋았다. 나에게 다시 부모님이 생겼다는 든든함이었다. 내 영어가 시원치 않아 어르신들과 대화를 제대로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 연세에도 두 분의 다정한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때는 연세가 있으시니 오래는 아니더라도 몇 년은 더 뵐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쉽게도 두 분은 남편과 내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시고 내가 뵌 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처음 시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 시부모님과 동서들이 스스럼없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캐나다의 가족 문화에 적지않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국 여성에게 가장 어려운 존재인 시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이토록 자유롭구나 싶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과 결혼한 이후로도 그 어렵다는 동서간의 갈등을 겪은 적도 없고, 한 명 있는 시누이와도 친구처럼 지낸다. 가까이 살며 자주 부딪히다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인주의의 서구 문화이다 보니 한국의 가족관계처럼 얽혀있지도 않고 위계가 서 있지도 않다. 그러니 아무래도 시댁과의 갈등구조는 훨씬 덜 한 편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약간의 감정적 버퍼링을 겪는다. 시댁 가족과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내 마음의 간격 때문이다. 내 안에서는 자주 한국의 시댁문화가 맴돈다. 시댁 식구들과 같이 있을 때 '내가 이렇게 편해도 되나?' 하는 망설임이 일어난다. 무언가를 해야할 것 같은 불안감이 일어나기도 한다. 전형적인 한국형 며느리의 마인드이다. 상대편에서는 아무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데 나 스스로 스트레스를 자초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한국문화에서 수십년을 살아오며 보고 배운 은연 중의 문화와 교육이 강력하게 나의 정신을 장악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말 떨쳐버리고 싶은 생각의 "습"이다. 요즘 한국 문화도 급격히 바뀌고 있는데, 내 세대가 받은 가부장적 전통과 교육의 영향이 이토록 강하게 나를 지배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울과 권태가 반복되는 삶을 살아오며 도대체 왜 내 마음이 이토록 힘든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 이유는 신화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신화가 재미있어서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 2년 전 조지프 캠벨의 책을 읽던 중 선사시대에 여신숭배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2년여에 걸쳐 여신문화를 공부했다. 여신숭배문화의 특징이 무엇이었으며, 여신숭배문화가 왜 가부장제의 남신숭배문화로 바뀌었는지를 공부하면서 나는 현대 여성의 심리적 억압의 기원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5천여년간 가부장제의 남성중심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동안 여성의 생명력은 심각하게 억압당해 왔던 것이다. 나의 우울과 권태는 내 생명력을 살려달라는 신호였다. 나의 심리적 억압에 대한 원인을 알고나자 많은 부분 저절로 치유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오랫동안 형성된 나의 문화적 영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한국 보다는 남녀가 조금 더 평등한 서구권에 와서 살다 보니 생활 속에서 여성 차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내 마음의 지도는 한국에서 형성된 것이다 보니 내 자신이 나를 괴롭힌다. 이미 반백년 한국에서 살며 습득한 가부장제 문화가 뼈속 깊이 새겨져 있어 다른 환경에 와서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컴퓨터 리셋하듯 깨끗이 삭제한 다음 바로 새로운 환경에 맞게 구축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다.
종종 백설공주, 신데렐라, 콩쥐팥쥐와 같은 동화를 떠올린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였다"라고 끝나는 동화는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 그들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 이전의 상황에서 벗어났지만 그동안 가족과 문화 내에서 입은 상처가 수시로 마음을 치고 올라와 내내 정신적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아무리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도 자라면서 받은 억압은 마음 속에 깊게 자리하고 언제든 마음의 평온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미국의 여성들의 삶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한국 여성의 삶에 비해 가볍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서구의 문화는 집단주의의 동양 사회보다 관계가 훨씬 단조롭다. 그렇다고 가족간의 관계가 소원하거나 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밖에서 만나 담뿍 정을 나눈 다음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는 모습을 흔히 본다. 이미 성인이 된 자식의 삶에 대해서는 노터치이다. 그만큼 부모와 자식 관계가 상쾌하다.
나의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형제자매는 한국에 살고 있다. 나는 형제자매와 조카들이 몹시 보고 싶다. 매년 한국에 가서 가족들을 보고 오지만 코로나로 연달아 두 해를 가지 못하고 있다 보니 어린 조카들의 성장과정을 보지 못해 안타깝다. 그런 마음 한편으로 나는 가족 관계에서 큰 부담감을 느낀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세세한 내용까지 말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가족 관계는 기쁨이자 마음 속의 묵직한 부담이기도 하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의 문제일 수도 있고, 맏이라는 위치가 지닌 무의식적 책임감일 수도 있다.
나는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한국의 격조있는 전통 문화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나 여성이 살기에는 힘든 사회인 것은 사실 아닌가. 양쪽의 문화를 모두 경험하고 있는 나는 각 나라가 가진 문화의 차이가 사람의 삶을 얼마나 다르게 엮어내는지 뚜렷이 경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