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잠을 자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자꾸만 아이들이 다치는 생각을 떨쳐내느라 그렇다. 며칠 전 읽은 책 때문이다. 어떤 여자아이가 잘못 사귄 남자 친구로 고생하다가, 기어이 집까지 찾아온 남자 친구에게 엄마가 보는 앞에서, 그것도 엄마의 주방에 있던 칼에 살해당하는 장면을 읽고 나서부터다. 굳이 머릿속에 그리지 않아도 될 몹쓸 장면들이 평화롭고 조용한 나의 밤을 때때로 괴롭혀 진저리가 쳐진다. 나에게 일어난 일도 아닌데, 일어나지 않을 일일 텐데, 엄마가 보는 앞에서 자식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읽은 것만으로도 왜 닭살이 오소소 돋아버리는 것인가.
실은 책은 핑계일 뿐, 그게 아니어도나는 종종 불안하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을 보면 예뻐 죽겠다가도 문득문득 불안이 덮쳐와 의식적으로 빠져나오려 애를 쓰곤 한다. 내가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혹여라도 예상치 못한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나의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의 완벽한 행복이 우연한 낯선 이의 악의로 인해 깨지기라도 할까 봐.
엄마, 아빠, 동생, 친구들. 아이들 말고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을 보며 이렇게까지 불안했던 적은 없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 대신 나를 키워주셨던 친할머니와 아주 각별했는데,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상태가 되었을 때도 내 마음은 이렇지 않았다.이건 그냥 내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사랑해서일까, 혹은 본디 나의 지나치게 예민한불안증세일까.
이번 여행에서도 그랬다. 제주 여행에서 현진이가 가장 가고 싶다던 항공우주박물관에서였다. 박물관 내에는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가 있었는데, 어른들은 펜스 역할을 하는 소파의자에 앉아있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뛰어놀 수 있는 구조였다. 아직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은 함께 들어와 아이의 놀이를 도왔지만, 대부분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밖에서 편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네 살 유진이는 아직 어려 아빠가 쫓아다녀주었다지만, 현진이는심지어 또래보다 덩치가 큰 편인 일곱 살임에도 나는 기어이 펜스를 넘어 아이들의 공간에 함께 들어갔다.아주 낯선 곳이었고 현진이보다큰 아이들도 많은 곳에서, 나는 안심한 채 편히 앉아있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현진이가 그물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 뛰어다니면 밑에서 나도 같이 뛰며 눈으로 현진이를 좇았다. 과격하게 노는 친구들이 근처에 있으면 '조심해'라고 열심히 외쳤다. 덩치만 컸지 공격력이라고는 제로에 가까운 현진이를 대신해, 내 아들이 부당하게 당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 투입될 태세로 현진이 주위를 맴돌았다. 나도 안다. 나의 과보호가 아이의 나중을 생각하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부딪혀보고 상처받고 다쳐봐야 아이들은 자란다는 것도, 나의 종종거림이 아이를 더 나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나는 다만 나의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것뿐이다. 만약에라도 아이가 다치거나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나에게 밀려오는 자책과 더 큰 속상함을 견디기가 몹시 힘들 뿐이다.
강해지고 싶다. 의연해지고 싶다. 다쳐도 그럴 수 있지, 속상해도 그러면서 크는 거지 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지금 나의 행복은 너무도 완벽하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나의 인생은 갈라진 틈 하나 없이 꽉 차게 행복하다. 너무 완벽해서 조그만 실금도 나에겐 큰 타격처럼 느껴진다. 그래서다. 아이들의 조그만 상처가 나에게 와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게 아픈 것은.
나는 자주 많이 불안하지만, 매일 매 순간 완벽하게 행복하다. 지금의 완전한 행복에 어쩔 수 없이 커다란 불안이 따라오는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불안하겠다. 나를 종종 힘들게 하는 불안이 나의 아이들이 완성해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면, 아이들에 대한 나쁜 생각에 진저리를 치며 잠들지 못하는 밤의 그까짓 피로쯤은 기꺼이 감수하겠다. 그러니까 바라건대, 나의 완벽하고도 불안한 지금의 행복이 절대 깨지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