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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Jul 25. 2022

자주 행복하고 커다랗게 행복한

엄마, 아이는 마이쮸와 소시지로도 충분해요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얼마전 아침을 먹던 현진이가 문득 야기했다.

'엄마, 나는 어른이 아이보다 더 좋은 것 같아.'

'왜?'

'어른은 학교를 안 가도 되고, 공부를 안 해도 되고, 나는 주스를 하루에 하나만 마실 수 있는데 어른은 커피를 하루에 두 잔 넘게도 마실 수 있잖아.'

'엄마는 어린이가 더 좋은데?'

'엄마는 왜?'

'아빠 같은 직장인 어른은 어린이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오래 일을 해야 하고, 어른에겐 책임져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일도 훨씬 많으니까.'

'그래도 나는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많은 것 같아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기도 해'


나도 어릴 땐 현진이와 같은 마음이었다. 현진이만큼 어렸을 때는 어른의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던 것도 같고, 험난한 사춘기 시절을 지날 때에는 어서 빨리 통제받는 미성년자의 삶을 벗어나고 싶기도 했었다. 어릴 땐 그랬다. 어른이고 엄마인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지만, 가끔씩 마음이 힘들고 복잡할 때면 어린이의 삶을 딱 하루만 다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쉽게 웃고 쉽게 울고 쉽게 행복해지고, 꼬인 마음도 없고 암호 해독하듯 풀어야 하는 복잡함도 없는, 해맑은 어린이 마음으로 딱 하루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골집에 놀러온 주말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잠깐 마트엘 갔다. 시골집 마당온갖 여름 과일들이 있었고, 내가 따로 챙겨 온 젤리와 초콜릿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마트에 따라온 김에 원하는 간식을 사 줄 테니 얼른 골라오라고 했고, 아이들은 마치 총알이 튕겨나가듯 순식간에 간식 코너로 뛰어갔다. 마트를 쓸어 담을 듯한 기세로 달려간 아이들이 골라온 것은 참으로 앙증맞다. 현진이 손에는 마이쮸와 소시지 하나씩, 유진이 손에는 내 손바닥보다도 작은 하리보 젤리 한 봉지. 할머니가 계산하는 동안 아이은 계산대 앞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어댔고, 계산을 마친 각자의 간식을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보물 챙기듯 손에 꼭 쥐었다. 리고 현진이는 '내가 정말 먹고 싶었던 간식이야! 내가 바라던 걸 할머니가 줘서 행복해!'라고 외쳤다.


겨우 마이쮸와 소시지 하나씩이 간절히 바라던 거였고, 이천 원도 안 되는 작은 선물이 아이를 이렇게나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니. 나는 무엇을 받으면 두 아이처럼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복잡한 나의 하루가 바랐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작은 것에도 쉽게 커다래지는 행복의 마음, 그것이 가능한 순진무구한 어린 마음. 누군가 힘든 순간의 나에게 마이쮸 하나를, 아니 한 통을 내민다 한들 나는 이 아이처럼 마음껏 기분 좋아질 수 있을까. 오만 부정적인 감정을 밀어내고 무지갯빛 풍선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일이 이 아이처럼 쉬울 수 있을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딱 하루만 주어진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도 높은 행복을 마음의 그릇에 가득가득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에 주스 한 잔만 허락되는 어린이와는 달리 나는 내가 원하면 서너 잔 커피 마실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오색 빛깔로 보이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속상한 마음을 초콜릿 하나로 달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나를 솜사탕 구름으로 데려가 방방 뛰게 만들지는 못한다. 원하고 바라는 것마저 커져버려 채워도 채워도 밑 빠진 독처럼 늘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은 어른의 마음은 아이들 앞에서 때때로 부러워지기도,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래서 반짝반짝 빛이 나나보다. 손바닥보다 작은 선물에도 쉽게 충분해지는 행복이, 아주 조금만 마음을 써줘도 틈 없이 채워지는 기쁨이, 아이들을 그렇게 빛나게 하나보다. 진이는 모르겠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는 현진이의 지금이 얼마나 예쁘게 빛나고 있는지. 작은 현진이가 느끼고 있는 행복의 크기를, 훨씬 커다란 어른은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작은 간식 하나에도 꽉 채운 행복을 만끽할 줄 아는 아들의 모습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기뻐할 줄 아는 아들의 모습이 참 고 예쁘다. 작은 것에도 자주 행복하고 커다랗게 행복한 내 아이들의 빛나는 보석같은 시절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오래도록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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