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TS Apr 28. 2024

14th.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 필립 얀시

의심의 기회가 없는 곳에는 믿음의 기회도 없다.

[나를 키운 팔할의 책]

                                                                                                                    


# 14.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 필립 얀시


나는 겁쟁이다. 나는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것이 너무도 두렵다. 사람들 사이를 떠나서, 사람들이 없는 곳에 혼자 은거하고 싶은 생각을 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실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웠고, 제자들을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웠고, (많지는 않았지만) 나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던 여자를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웠었다. 그처럼 내가 믿는 분도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웠었다.


심리학에서 투사라는 방법이 있다. 대상에 대해서 자신이 느끼는 심정을, 상대방이 오히려 느끼고 있다고 전가하는 자기방어 기제인데, 내게 있어서 실망에 대한 메커니즘이 이와 유사하게 작용하였다. 상대방이 내게 실망하는 것이 두려운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워서, 마치 내가 상대방에게 실망하였다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세상에 실망했다, 사람들에게 실망했다, 학교에 실망했다 등의 표현을 썼던 것은, 내가 세상과 사람들, 학교을 실망시키는 존재가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나,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용기를 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는 내게 오랫동안 반복되었던 실망 매커니즘을 떠올리게 한다. 


필립 얀시는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작가이다. 나는 원래 시나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문학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오랜 방황 후에 필립 얀시나 C.S 루이스, 헨리 나우웬처럼 기독교를 깊이 이해하고, 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독교 변증가가 되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 꿈은 내가 아직 처리 못한 신앙적인 회의감으로 인해 아주 오랫동안 지체되어 왔다. 어쩌면 시작해서는 안되는 꿈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을 버린 기독교 변증가라니.. 말도 안 된다. 


다만 나는 필립 얀시처럼 되고 싶었다. 교사를 사직한 후에는 신학대에 가서 본격적으로 공부해볼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기독교의 깊이를 겨우 “긍정의 힘”이나 “목적이 이끄는 삶” 정도로 저렴하고, 수준 낮게 이해하고 있는 세상과 교회에 대해, 필립 얀시나, C.S 루이스, 헨리 나우웬 같은 선배들이 보여줬던 깊이 있는 이해와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나 또한 전하고 싶었다. 현재는 선택지에서 우선 순위가 밀려있는 상태이다. 그래도 내 성격상 끈덕지게 고민하고는 있다. 


내가 필립 얀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것은 이성의 영역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 신뢰를 시간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상황 속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한 이성의 검증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필립 얀시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신앙에 대해 어떻게 고민하면서 살아야 되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나는 그의 치열한 고민들을 따라가면서, 의심이라는 것이 결코 위험한 것이 아니며, 이러한 끝없는 검증을 통해서 단련한 신앙만이 진짜 신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라는 책의 제목은 매우 도발적이다. 어떻게 신앙인이 이러한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작가가 불신을 품게 된 청년과 이야기를 하면서 얻게 된 3가지 화두에 대해, 치열한 고민한 흔적이 담겨 있다. 그 화두는 다음과 같다. 하나. 하나님은 공평하신가? 둘.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셋. 하나님은 숨으셨는가? 작가는 이 질문들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지식과 믿음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탐구해 들어가서,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정직하게 서술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감정이라는 것이 신앙과 배척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신의 섭리나 마음을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신이 부재하는 듯한 그 감정적인 동요가 찾아왔을 때,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제대로 끝까지 붙들고 고민해도 괜찮다는 그러한 가르침을 배웠다. 의심하는 신앙... 그 방향을 가르쳐준 책이다.


“의심의 기회가 없는 곳에는 믿음의 기회도 없다.”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에서...


* 직접적인 개입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모든 힘에 내재된 한계에 관한 중용한 통찰을 제시한다. 힘은 모든 걸 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못한다. 사랑만큼은 조절할 수 없다.


* 사람은 불순종하고 싶을 때 순종을 배우고, 도망치고 싶을 때 용기를 배우는 법이다.


* 인내는 그저 어려움을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영광으로 바꾸는 능력이다.


* 초자연을 믿는다는 건, 지금 여기서 가장 훌륭한 삶을 살아내는 걸 믿는 것이다.


* 지식은 피동적이고 지적이다. 반면에 고난은 능동적이고 인격적이다. 어떤 지적인 대답도 고난을 해결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하나님이 고통을 경험하고 그것을 자신 속에 흡수하시려고 말이다. 성육신은 인간의 고난을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능동적이고 인격적인 반응이었다.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말씀보다 더 호소력있는 말은 없다.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모든 것이 희미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안개가 자욱할 때, 가장 잘 개발되는 거 같다.


*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람들, 특별히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이라고 하나님이 침묵하는 듯한 혼란스러운 시간을 면제받지 않는다. “의심의 기회가 없는 곳에는 믿음의 기회도 없다.” 믿음에는 불확실성, 혼동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