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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01. 2024

15th.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레스터 카터

어른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따뜻한 기억이다.

[나를 키운 팔할의 책]

# 15.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레스터 카터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떠날 것인가? 내게 시간이 얼마 없다면, 나의 최후의 시간을 어떤 모습을 맞이할 것인가를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답들은 그간 제법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이제 47살이 되고 보니, 그 답이 하나로 수렴하게 된다. 내가 최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나는 가출을 해서, 홀로 세상을 떠돌고 있기를 소망한다. 이게 참 외롭고, 궁상맞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러한 최후가 내 영혼의 결에 맞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소설은 이러한 나의 결을 찾는데, 꽤 깊은 영향을 끼친 이야기가 겨 있다. 이 소설은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재밌는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거 같다. 다만 내게는 너무도 재밌는 소설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이 소설을 읽었던 상황적 특성에 기인한 바 크다. 입대 후 이등병 때, 편지를 제외한 모든 글을 읽는 것을 금지당했었다. 일병이 되어 책읽기가 허용되었을 때, 부대의 서고에서 사람들이 제일 읽지 않는 소설만이 이제 막 일병이 된 나의 읽을거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잔잔한 이 소설 읽으며, 숨죽여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소설을 다 읽은 날, 근무를 다녀와서 잠이 들었을 때, 어린나무처럼 방랑을 떠나는 꿈을 꿨었다. 그게 21살 때이니, 어느새 26년이나 지난 셈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작은 나무'라는 이름의 체르키 인디언 아이가 주인공이다.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다. 부모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은 분명 ‘작은 나무’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지만,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린 나무’의 상처를 따뜻함으로 온전히 품어준다. 이 세상에 비극은 언제나 계속될 수밖에 없지만, 이 비극을 어떻게 품어주느냐에 따라 슬픈 기억은 얼마든지 따뜻한 날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알려주었다. 체로키 인디언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나이 드는 것이 허락된다면, 꼭 이 소설의 할아버지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왜 이소설이 그토록이나 좋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힘들다. 다만, 유독이나 술을 좋아하시고, 젊은 시절 한량같으셨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8남매의 자녀가 있으셨지만, 할아버지는 일하기보다는 노는 곳을 좋아하셔서 가족들을 많이 힘들게 하셨다. 그래서 장남이던 아버지는 노는 것을 포기하고, 죽어라 일만 하는 삶을 살아온 셈인데, 신기한 것은 할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한결같이 모이던 친척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구심점을 잃고, 그대로 흩어져서 교류 없이 각자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할아버지는 성실하지 않으셨지만, 사람을 좋아하셨고, 즉흥적이셨으며, 낭만적인 분이셨다. 아버지 어머니의 경제적 사정으로 동생과 시골집에 맡겨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몇개월 보낸 적이 있는데, 그 얼마 안되는 시간의 기억들이 내 유년시절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이제 혼자 남은 ‘작은 나무’는 키우던 두 마리의 개와 함께 방랑을 나선다. 그 방랑길에서 두 마리의 개도 세상을 떠나게 되고, 온전히 혼자 남겨진 ‘작은 나무’가 방랑을 계속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분명히 슬픈 결말인데, ‘작은 나무’는 온전히 방랑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추억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돈도 아니고, 재능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따뜻한 기억”이다. 이 기억만 있다면, 혼자서 걷는 방랑길도 외롭지 않다. 더 이상 비극이 되지 않는다.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에서..


* 뭔가를 상실 했을 때는 녹초가 되도록 지치는 게 좋아.


* 칠면조는 사람하고 닮은 데가 있어. 뭐든지 다 알고 있는 듯이 자기 주위에 뭐가 있는지 내려다 보려고 하지 않아. 항상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있는 바람에 아무 것도 못 배우지.


* 그 사람이 가진 건 자부심밖에 없을 거야. 좀 잘못 발휘되기는 했지만, 그 친구는 그 여자애나 자기 자식 중의 누군가가 자기들이 가질 수 없는 걸 좋아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자기들이 가질 수 없는 걸 받아들고 좋아할 때는 매를 드는 거란다.


* 다른 생물들도 그렇겠지만 새들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알아본다.


* 작은 나무는 상냥하고, 강하고, 용감하다네. 작은 나무는 절대 외톨이가 아니야.


*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할머니는 어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를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다.


*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 자연의 이치란 필요한 것만 취하는 거야. 동물들은 이 이치를 알고 있지. 하지만 꿀벌은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 그래서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에게도 빼앗기는 거란다.


*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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