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TS May 10. 2024

25th 여정.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해 읽고 있습니다.

다 가질 수 있지만, 네 주위를 위해서 남겨 두어라.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회색인인 거 같습니다. 떠돌이, 탕자, 잃어버린 영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으며, 가장 소중한 친구의 형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이 편지를 몇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이 편지에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성경을 읽으며, 생긴 온갖 종류의 생각들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형님의 요청에 정직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스물다섯. 출애굽기 23장 10절~11절
너는 육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찌니라.



인간은 과연 과거에 비해서 더 나아졌는가. "너의 발언은 전근대적이다.",  "너의 생각은 낡았다" 등등의 표현은 과거에 대한 현대인들의 우월감을 드러낸다. 그런면에서 성경은 참으로 오래된 과거의 기록물이다. 위 구절은 우리가 비웃기 좋아하는 아주 오래 전의 낡은 산물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보다 더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도전적인 메시지를 본적이 없다.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소유한 이들을 향한 준엄한 명령이 선포된다. "너는 육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라." 열심히 일하고, 그 결실을 온전히 쟁취할 것을 격려한다. 인간이 지닌 이기심일수도 있는 욕망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해서 마냥 낙관적으로 보지도 않는다. 만약 여기서만 그쳤다면, 인간의 소유에 대한 욕망은 자본주의의 비극으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의 큰 도전이 있다. "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더 일해서 이윤을 낼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멈추고, 가난한 이들과 나누라는 엄청난 요구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다.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인간보다 들짐승(동물)이 우선할 수는 없다.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선언에 대해 나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인간이 먼저고, 동물이 나중이다. 그러나 들짐승 또한 나눔과 공존의 대상임은 분명하다. 이 구절에서는 함께 나누는 대상을 인간으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들짐승(자연)에게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공존이라는 가치는 내가 능히 취할 수 있는 것들을 취하지 않고, 포기하는 데에서 발현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삶에 있어서 그만 거두고 묵혀 두어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