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TS May 07. 2024

24th 여정. 출애굽기를 읽고 있습니다.

치우치지 말고 옳은 길에 서라. 삶의 흔적을 넘어서라.

스물넷. 출애굽기 23장 1절~3절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찌니라.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자들이 싫었다. 이는 내 오랜 열등감에서 비롯된 흔적일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전까지, 비디오 가게 아들네 집에서 딱따구리라는 만화를 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그래서 그녀석이 나보다 1살이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반말을 하고, 심부름을 시키는것도 군말없이 했다. 그래야 그녀석네 집에서 만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그녀석의 친구들까지 전부 반말을 하는 것도 견디다가, 초등학교 4학년때 전학을 오면서 그 상황을 벗어났다.


우리 아버지는 국민학교(초등학교)만 나왔고, 우리 어머니는 국민학교 졸업을 못하셨다. 집안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아버지는 인쇄공장에서 인쇄기술자로 일하시다가, 공장에 불이 난 이후로 지금까지 막노동을 하고 계시며, 어머니는 결혼하신 직후부터 두 무릎 수술 전까지 파출부일을 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는 순간 집에서 학벌이 제일 높은 사람이 되었다. 공부에 대한 부모님의 간섭은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해야 했다. 그게 당연했고, 나는 내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야 했다. 교사를 하면서도 부모님들이 자녀 공부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잘 공감이 안되었다. 그래서 학부모님께도 결례도 많이 범했다.


그래도 인간 유성호... 이제사 이야기하지만, 그 많은 열등감에도 불구하고 나쁜 선택을 하지 않고, 참 잘 컸다. 정말 노력하면서, 땀흘리면서 열심히 살아왔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싫다. 나는 그때보다 더 열심히 살 수 없을 거 같다.


그런데 나의 성장 환경이 내게 치명적인 흔적을 남긴 것이 있다. 그것은 이분법적인 사고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들은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로 나뉘며, 힘없는 자는 힘있는 자로부터 착취당한다" 이러한 도식은 내 영혼에 한가득 선명하게 새겨진 듯 하다. 언제나 힘 없는 이들의 입장에 서기로 다짐해왔다.


그래서 나는 힘있는 사람이 싫었다. 하나고에 처음 왔을 때, 제일 싫었던 사람이 이사장이었고, 두번째로 싫었던 사람이 교장이었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힘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싫었었다. 내 시선은 약한자들, 고통당하는 자들을 늘 향하고 있었고, 그것이 선인줄 알았다.


그러다가 9년 전, 그의 거짓말을 접했다. 그는 나에게 요청했다. 자신이 언론에다 일을 벌이면, 학교 내부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만들어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평상시의 나는 당연히 그의 편을 들었어야 한다. 학교와  교사가 다툰다면, 교사는 약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약자의 편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게 편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편을 들지 않았다. 그의 요청에 밤을 세워 고민한 후, 나는 그와 결별했고, 그에게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가 승리했다.


종종 생각한다. 9년 전 그때로 돌아가서, 동일한 요청을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부고발이라는 이름을 이길 명예가 내게는 없다. 수많은 일반고 출신 학부모들로부터 가해지는 힘있는 자사고의 이기주의라는 비난에 대해 대항할 논리가 내게는 없다. 출세에 눈이 멀어 동료교사를 외면하고 학교편을 들고 있다는 사람들의 비아냥을 견딜 담담함이 내게는 없다.


그래도 9년 전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동일한 결정을 했을 거 같다. 나는 이제 약자가 강자에 비해서 옳다는 무조건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강자로 보이는 사람도 선할 수 있고, 약자로 보이는 사람도 악할 수 있음을 이제 인정한다. 어쩌면 나는 내 성장 환경이 내게 새긴 흔적을 극복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찌니라."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회색인인 거 같습니다. 떠돌이, 탕자, 잃어버린 영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으며, 가장 소중한 친구의 형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이 편지를 몇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이 편지에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성경을 읽으며, 생긴 온갖 종류의 생각들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형님의 요청에 정직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전 15화 23th. 낭만적인 노예의 선택을 읽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