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펜을 들었다. 아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빗줄기가 굵어졌다. 눈은 모니터에 고정을 한 채, 왼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던 그녀가 오른손으로 와인잔을 든다. 잔이 비어있다. 책상의 가장자리에 와인병이 하나 서있었다. 모니터 앞에서 잠시 몸을 일으키며, 그녀가 와인병을 잡는다. 아무리 급해도 와인은 천천히,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을 음미하듯이 따라야 한다. 혼자서 글을 쓸 때 그녀는 와인을 한 병씩 마시곤 한다.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그녀의 유일한 도착증이 와인이다.
포르노 수준의 연애소설을 쓰는 작가 이연우는 잘 나가는 인터넷 작가이다. 싱글이다. 애인도 없다. 대학 시절 어설픈 연애 경험이 그녀가 현실세계에서 직접적으로 얻은 유일한 연애 지식이다. 나머지 98프로는 소설책과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친구들을 통해서 얻은 지식들이다. 내년이면 그녀도 오십이다. 나이처럼 머리카락도 벌써 반백이다. 연우는 그 흔한 염색도 하지 않는다. 화장은커녕 외출도 거의 없는 편이다. 해질 무렵 트레이닝복 차림에 모자 하나 눌러쓰고 동네 산책을 할 뿐이다. 기괴한 여자다.
이연우에게 친구는 몇 명 있다. 1대 2 섹스를 즐기는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이 그녀의 작업실에 놀러 오는 친구들이다. 가끔 그녀의 작업실에서도 그들은 섹스를 한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글을 쓰다가, 작업실을 슬쩍 빠져나가기도 한다. 그들로부터 얻게 되는 섹스 지식들이 많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1대 3으로는 어렵다고, 연우가 낄 거면 다른 여자 한 명이 쉬어야 한다고 김범준은 단호한 선생처럼 말했었다. 연우가 그룹섹스엔 흥미 없다고 말하자, 범준이 1대 1 제안을 했던 것도 십오 년 전 일이다.
여자 멤버 한 명은 간혹 바뀌지만, 범준과 수현은 고정이다. 그 둘은 십칠 년 된 관계다. 범준은 결혼을 한 상태에서 수현을 만났었다. 수현은 지금껏 싱글이다. 올 해로 수현은 쉰둘이 되었다. 범준이 오십삼이다. 질긴 인연들이다. 우정이기에 가능한 섹스파트너 관계다. 범준의 와이프도 범준의 행적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결혼한 사람들이다. 섹스의 자율권 보장이 그들의 결혼 조건이었다.
연우의 작업실 출입 조건은 단 하나뿐이다. 담배만 피우지 않으면 된다. 물론 배변 활동과 오바이트는 화장실을 이용하자는 주장이다. 그룹 섹스 후 어질러진 건 저지른 놈들이 치우자는 주장도 추가다. 다른 건 다 해도 된다. 하지만 주장은 권고로 끝날뿐, 뒤치다꺼리는 연우 몫일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연우는 저 친구들이 좋다. 위선이 없다. 굳이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우정을 가장하여 마음에 없는 빈말들을 날리는 여자들에게 연우는 넌덜머리가 난다. 그런 부류의 친구들은 대부분 뒤통수를 치거나 배신을 했다. 본인들은 배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위선적이다. 그래서 연우는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다. 다 거짓 관계였다.
연우가 그녀의 블로그에 모집 공고 글을 하나 띄웠다.
<육인야화의 주인공을 모십니다. 당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소설로 써드리겠습니다. 단 여섯 분의 독자님에게만 주인공이 되실 기회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