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가 띄워놓은 모집 공고에 69명이 지원을 했다. 그들이 기재한 직업과 나이, 이름 등은 거짓일 확률이 높다. 연우는 모집 공고에는 조건을 붙이지 않았지만, 44세에서 53세 안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우선 추려본다. 나이는 차이나야 한두 살이다. 취업도 아니고 굳이 여기에서 나이를 속일 건 없을 것이다. 나이가 너무 어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신의 것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래서 연우는 연우와 비슷한 나이대로 일단 잡아보기로 했다. 성별은 남성들로만 한정시킨다. 여자들을 상대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남성이면서 44세에서 53세까지 추려보니, 다섯 명이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해당하는 여성이 있나 찾아본다. 재밌어지려면 여자 한 명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자가 둘만 돼도 서로 싸운다. 그 나이대에 해당하는 여성이 둘이 있었다. 연우는 고민을 해본다. 연우의 독자들이지만, 연우 역시 그녀들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엔 두 명의 여성 중에 한 살이라도 젊은 여성을 선택해본다. 여섯 명의 독자들에게 연우가 이메일을 보냈다.
<4월 4일 오후 7시, 혜화역 4번 출구 앞 "릴리" 세미나룸, 작가와 독자 여섯 분 첫인사>
그리고 블로그에는 모집이 마감되었으며, 신청자 가운데 안된 분들에겐 죄송하다는 사과의 문장까지 올려놓았다. 어떤 기준으로 심사를 했느냐고 따지고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연 메일을 받은 여섯 명이 공식적인 자리에 나올 것인지, 연우는 그게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연우가 처음으로 머리 염색을 했다. 독자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다. 반백의 할머니가 글을 쓴다고 하면, 기운 없어 글을 쓰겠느냐 의심 어린 눈초리가 쏟아질 게 뻔하다. 연우의 젊은 시절 머리 색깔처럼 갈색으로 염색을 했다. 정말 젊어 보이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한다. 십오 년 전처럼 여전히 살집이 없는 연우가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하고 작업실로 들어섰다. 범준이 이미 작업실에 와있었다. 범준이 깜짝 놀라서 안경 너머로 눈동자만 굴리는 모습이다. 연우가 무심하게 입을 연다.
"십오 년 전 제안 유효해? 흐흐흐"
"언제나 유효했지~와, 반백만 보다가 진짜 서프라이즈다, 호러야 호러. 왠지 무서워지는걸~"
범준은 진심이다. 연우가 남자도 만나지 않고 늙는 게 기막히게 억울했던 범준이다. 범준이 연우를 갖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등신 같은 연우라고 생각했었다. 인생을 허비하는 연우를 범준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우가 변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변한 건 변한 거다.
4월 4일 오후 7시가 가까워온다. 연우는 이미 릴리에 도착해서 세미나룸에 앉아있다. 이제 곧 저 문으로 한 명씩 독자들이 입장할 것이다. 연우는 세미나룸 테이블에 독자들의 닉네임을 세팅해놓았다.
똑똑똑~ 첫 번째로 키가 큰 남자가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놓인 닉네임을 알아보고,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검은 표범님이다. 그는 자신을 51세 회사원이라고만 적었었다. 가볍게 안녕하세요~라고만 인사를 나눈다. 눈빛이 순간적으로 날카롭다. 그리고 이내 조용한 눈빛이다.
두 번째로 안경을 쓴 키가 작고 통통한 남자가 백팩 하나를 메고 들어온다. 세미나룸의 벽면과 천장까지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더니, 해리포터라고 적힌 이름 앞에 앉는다. 백팩을 그의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저 사람은 45세라고 자신을 소개했었다. 직업을 뭐라고 적었더라~ 아, 방사선사다.
곧이어 세 번째는 여자다. 44세 유일한 여성이었다. 아름답고 기품 있는 여성이다. 연우는 잘 뽑았다고 생각이 든다. 여자는 일단 이쁜 게 좋다. 파란 하늘님이다. 직업은 피아노 선생이라고 했었다.
조용히 문이 열리며 얌전한 남자가 빼꼼히 안을 들여다본다. 수줍게 인사하며 들어오는 그가 민들레 이름 앞에 앉는다. 그래, 성별은 남성인데 민들레라고 적었길래, 순간적으로 성소수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했던 게 떠오른다. 겉은 남성인데, 속은 완전 가녀린 여자다. 고운 심성이 느껴져서 슬프다. 44세 민들레는 산부인과 의사다. 민들레가 비겁한 세상에서 그래도 잘 버티고 의사가 된 것이, 연우는 누나처럼 자랑스럽다. 별 일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독자 두 명은 거의 동시에 문을 통과한다. 하얀 피부에 수려한 이목구비가 돋보이는 다섯 번째 독자는 적토마님이다. 큰 키는 아니지만 하체가 단단해 보인다. 48세 변호사다. 그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53세 사업가다. 머리숱이 조금 아쉽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을 갖고 있다. 닉네임은 호랑이다. 첫 번째로 등장했던 검은 표범과 마지막으로 입장한 호랑이의 기운이 심상치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