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의 독자들이 다 입장을 했다. 연우가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연우입니다. 제 블로그에 올린 모집 공고를 보시고 신청해주셨던 독자님들 가운데, 최종 선발된 여섯 분의 독자님들을 오늘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이번 소설에선 글은 제가 기록하는 것이나, 상상력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상상력을 글로 옮길 뿐입니다. 두 가지 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섯 분의 독자님들을 각각 하나의 챕터로 구분하여, 여섯 개의 독립된 스토리를 엮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여섯 분 모두가 한꺼번에 하나의 스토리 속에 들어가시는 겁니다. 두 번째 방식을 택할 경우 여기 계신 여섯 분은, 이번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한분도 빠짐없이 매주 함께 모이셔야 한다는 불편이 따릅니다. 선택은 여러분께서 하시기 바랍니다."
여섯 사람 가운데 해리포터가 손을 들었다.
"두 번째 방식에서도 주제는 저희들이 정하는 건가요?"
"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다 여러분이 정하신 주제와 이야기들로 전개됩니다. 저는 단지 이야기를 구성해서 옮기는 타이피스트에 불과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다 여러분의 상상력으로만 집필됩니다. 여러분께서 결정을 내리실 때까지 저는 잠시 룸 바깥에 있겠습니다."
연우가 말을 마치고 조용히 세미나룸을 나왔다. 3층 아래로 서있는 가로등 불빛이 릴리의 작은 정원을 밝히고 있었다. 벚나무에 옅은 핑크빛을 띤 꽃잎들이 밤의 정원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밤에 피어나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연우는 생각했다. 우주의 무한한 어둠 속에도 분명히 핑크빛의 벚꽃잎처럼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할 것이다. 연우가 와인을 두 잔째 마시고 있을 때였다. 해리포터가 다가왔다. 둘이 세미나룸으로 들어간다. 여섯 명 중 가장 연장자인 호랑이가 말했다.
"만장일치로 두 번째 안을 선택했습니다. 모두들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여기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검은 표범이 호랑이의 뒤를 이어 발언을 한다.
"주제는 이러합니다. 여기 계신 파란하늘님이 다섯 명의 남자들과 연애를 하는 겁니다. 매주 한 명의 남성이 파란하늘님의 연애 상대가 되어 전개될 이야기를 창작할 겁니다. 그러면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연애 이야기를 자기 식대로 창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다음 주에 호랑이님부터 파란하늘님의 연애 상대가 되어 원하는 이야기를 하실 겁니다. 다른 네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도 그 이야기를 함께 듣고 그다음 자기의 연애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작가님 의견은 어떠십니까?"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저의 의견은 필요치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파란하늘님의 이야기는 무엇이 되는 건가요? 다섯 명의 남자들과 한 명씩 차례대로 연애를 해보고, 최종에 한 사람을 선택하는 속마음을 이야기로 푸실 건가요? 다섯 분의 남성 독자들의 이야기는 있는데, 파란하늘님은 상대역으로만 등장하는 수동적인 인물이신 건가 궁금해서 여쭙니다."
다섯 명의 남자들은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다는 듯이 파란하늘을 쳐다본다. 파란하늘이 대답을 한다.
"저는 마지막 챕터를 해볼게요. 작가님 말씀처럼 제가 다섯 명의 남자와 연애를 다 해보고 최종적으로 한 남자를 선택하게 될지 어떨지 저도 지금은 알 수가 없어요. 그냥 스토리가 전개되어 가다 보면, 제게도 어떤 마음이나 판단이 생기지 않을까 싶군요. 괜찮겠지요?"
파란하늘이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연우를 바라본다. 저 아름다운 미소 앞에선 누구든 무엇이든 거절할 수가 없을 것이다.
"네, 충분히 알겠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호랑이님이 상상하는 파란하늘님과의 연애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저는 녹음기와 태블릿을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녹음기 사용에 동의하십니까?"
모두들 이의가 없었다. 여섯 명의 독자들은 서로의 이름과 직업과 나이를 묻지 않았다. 연우는 익명이 주는 편안함을 방해할 생각이 없다. 그들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끼리의 관계는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연우가 처음으로 시도한 이번 프로젝트가 별 탈없이 무사히 마쳐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날 릴리에서의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