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와 이미지

by 도라지

한 때는 배용준을 좋아했었다. 그러다 '커피프린스'가 방영되고 '도깨비'를 본 이후로, 내 취향의 남자는 공유일 거라고 확신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들 두 남자를 좋아하게 된 건 다 남편 탓이다.


남편을 만나기 이전에 나는 어둑할 만큼 현실 세계의 남성들에 대해 잘 몰랐다. 남자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18세 여고생들의 여성성을 국가가 나서서 철저히 제약을 걸고 있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나의 흠모의 대상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였으며, 동시에 <좁은 문>에 등장하는 제롬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뭘 모르고 살았던 나를 쫓아다니다가 결국 결혼에 성공한 남편은, 베르테르와 제롬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버스에서 나를 따라 내렸던 남편에게 내가 처음 했던 말도 "당신은 내 애인형도 친구형도 아니다"는 단호한 거절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랑 결혼해서 아들 둘까지 낳고 아직도 같이 살고 있다.


내가 찾던 베르테르나 제롬 같은 남자랑은 연애 한번 못해보고 때로 희극인 같은 남편이랑 결혼해서 살자니, 내 맘 속에 딴 남자가 안 들어오고 배기겠는가. 그렇게 내 안에 들어온 첫 남자가 배용준이고, 다음 남자가 공유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취향이 바뀐 건지, 공유가 광고하는 테라는 꾸준히 마시고는 있지만, 내 맘 속엔 공유가 아닌 다른 남자가 들어와 있다. '신비한 동물사전'에 나오는 에디 레드메인이다. 물론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도 좋았지만, 동물사전에서 너드(nerd)한 뉴트 스캐맨더 역할을 한 에디 레드메인을 특히나 좋아한다.


한 사람의 얼굴선을 나의 손끝에서 느껴보고 싶은 욕망을 그에게서 처음 갖게 되었다. 마치 조각가가 그의 작품을 손끝으로 느끼며 빚어내듯이, 상상 속에서 나는 그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선의 흐름을 따라 손끝을 움직여 본다. 약간 튀어나오려다가 만듯한 구강 구조에 얼굴 전체에 퍼져있는 주근깨는 오히려 더 매혹적이다. 그의 구부정한 어깨선과 비스듬히 걸어가는 특유의 걸음걸이마저, 그는 내겐 너무 완벽한 뉴트 스캐맨더이다. 그가 스캐맨더를 연기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에게 사로잡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에게 빠져있는 사이, 코로나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길어진 장마 때문인지 남편은 심술이 늘었다. 지난 토요일 밤 초등 동창들과 재밌게 노느라 자정 넘어 귀가했던 남편이, 지하주차장에 주차칸이 없어서 애를 좀 먹었던가 보다. 어느 아파트나 주차문제가 심각하듯이 우리 아파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난 남편이 주차장 문제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지는데 듣기가 싫어서 건성으로 대꾸했더니만, 일요일 하루 내내 소파에 누워 심술을 부린다. 혼자서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밥만 차려주고 책을 읽거나 한다.


리얼리티 속의 남편은 늘 저 모양이다. 남편의 리얼리티 속 마누라 또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다. 캐릭터 어쌔신이 될 수도 있으니, 늙어가는 서로의 외모는 운운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도깨비의 공유나 신비한 동물사전의 스캐맨더 같은 남자들은 내 상상 속에 살고 있는 이미지들이지만, 나는 그들을 통해 가끔 즐겁고 행복해진다.


이미지와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경험하는 사람은 진리인 이데아로부터 멀어져 올바르지 못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플라톤은 모든 예술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었다. 공동체 전체의 선을 향해 나아감에 있어, 어떠한 것에 관해선 차라리 민중들이 모르는 편이 더 나을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 지도 모르겠다. 플라톤에겐 상상과 이미지로서의 예술이 그러했나 보다.


그러나 플라톤은 정말 알지 못했던 것일까? 이데아에 이르는 길은 이성을 통해서뿐만이 아니라, 상상과 이미지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은 리얼리티 속을 건너가는 존재이다. 리얼리티와 이미지를 구분하는 자에게, 이미지의 세계는 리얼리티의 우호적 조력자인 셈이다. 문제는 리얼리티와 이미지를 구분하지 못한 채로, 환상과 이미지의 세계에 리얼리티의 자리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경우다.


내겐 때로 희극인처럼 보이는 남편에게도 그 사람만의 이미지와 환상의 세계는 있을 것이다. 그 세계 속에 누가 살고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다. 리얼리티 속에서 저렇게 우스꽝스럽게 심술만 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너무 늙어버려서 나만의 베르테르를 기다릴 수 없게 되어버린 나는, 노래 주머니 혹 대신 남편의 심술보라도 도깨비에게 팔아볼까 잔머리를 굴려 본다.


(2020년 8월 10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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