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선 분명히 비가 온다고도 했는데, 맘먹고 맑은 날을 잡기라도 한 듯이 땡볕이었다. 장마철이라고는 하지만 산책 모임을 미룰 수 없어,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들 우산 한 개씩 들고 나왔다가 쏟아지는 땡볕을 피하려고 우산들을 펼쳤다.
토요일 점심을 청주에서 거하게 먹고, 우리는 좌구산 삼기저수지로 이동했다. 차라리 비라도 내리면 좋으련만, 오후 세시의 저 폭염 속으로 아무도 선뜻 들어가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시원한 카페에서 냉커피라도 한잔씩 들이키는 게 낫겠다 싶어, 친구들을 몰고 이쁜 카페로 들어갔다. 나는 돈주머니를 쥔 총무다. 물론 비선실세 같은 친구 하나가 터줏대감마냥 이 모임에서 무게를 잡고 있지만, 나는 십팔 년째 총무에 회장 감투까지 겸하여 쓰고 있다.
장마철이라 일부러 산행을 피하고 저수지 데크길을 택했던 것인데 오산이었다. 카페에서 일어날 생각을 않고 있는 친구들에게 걸어야 산다는 부드럽지만 위협적인 논리를 앞세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우산 한 개씩 펼치고 기어이 뙤약볕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요즘 부쩍 시골 텃밭이 부러워진 내가 이것저것 밭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들의 이름을 묻자, 시골 촌부의 자식답게 선옥이 척척 답을 준다. 그러다가 그녀도 모르는 희귀한 게 눈에 들어왔다. 사진 찍어서 어플에 물어본다고 수선을 떠는데, 동네 아저씨인지 텃밭 주인인지 정체도 불분명한 분이 우리들의 선생을 자청해서 등장한다. 가만 두면 길 안내까지 해주실 것 같아 서둘러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땡볕의 오후 4시, 저수지 데크길엔 시커먼 우산 네 개가 걸어 다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친구들은 재밌어서 깔깔거린다. 드디어 내가 아는 자귀나무 한 그루가 저만치 보인다. 전교 꼴찌가 달랑 한 문제 맞히고 자랑질하듯이 유난을 떠는 나에게, 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는 선옥이가 입을 연다.
"저 꽃이 피기 시작하면, 교장 선생님 마누라가 그렇게 좋아한댄다. 곧 여름 방학이 시작되겠구나~라면서 말이야."
그러고 보니 내 친구들 가운데 학교 선생 마누라는 없다. 자귀나무 꽃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따라 웃으며 길을 걷는데, 저 멀리 덩치 큰 검은 새 한 마리가 물 위로 솟아있는 나무에서 양쪽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날개깃을 말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즘 들어 개체수가 부쩍 늘어서 물가에서 자주 보이는 가마우지다.
어디에선 어부들이 가마우지 목에 줄을 묶어서 가마우지가 낚은 물고기를 빼앗아 포획하는 수법을 쓴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자본주의에서 대다수의 노동자는 가마우지 신세와 다를 바가 없다.
뙤약볕에 다른 인적은 없고, 가마우지 한 마리와 우산 네 개가 삼기 저수지 위에서 잠시 쉬어갔다.
(2021년 7월 13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