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후반으로 들어설 때쯤 프리랜서로 몇 년간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다가 취재 일도 끊기고 굳이 글을 써야 할 이유 같은 것도 없어서, 이후 십여 년 세월을 딱히 글을 쓰지 않고 살았다.
두해 전 대학동문회의 집행부 일원이 되면서 송년의 밤을 준비할 때였다. 식당에 걸 현수막과 학부 재학생 후배들 장학금, 동문 선배님께 드릴 공로패 등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쳐놓고 드디어 내일 송년의 밤을 기다리던 전날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일상을 살고 있는 동문들을 한 곳에 불러 모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동문회 활동을 하면서 체득한 결과였다.
그래서 동문 밴드에 글을 올렸다. 에세이 형식으로 나의 마음을 전달했다. 그건 마치 호객행위랑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동문밴드에 나의 글쓰기는 시작됐다. 일 년에 몇 번 있는 동문 행사 소식만으로는, 밴드에 동문들을 자주 드나들게 하는 데 한계를 느꼈던 까닭이다.
글쓰기는 언제나 나의 얘기로 시작됐다.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만 동문회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별로 내세울 거 하나 없는 볼품없는 나같은 사람도 동문회의 일원으로서 즐거운 인생을 함께 살아갈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걸, 숨어있는 동문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시시한 나의 이야기가 과연 얼마나 울림을 주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해 송년의 밤은 색소폰과 판소리 등 동문들의 빛나는 재능을 기부받아 비교적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돌아가며 노래도 한 마디씩 했다.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선배님 식당은 우리 동문회의 공식적인 모임 장소다. 십몇년째 삼겹살만 먹는 게 지겹다고, 제발 다른 동문이 횟집이라도 하나 개업하시라고 뒷구멍에서 농담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저녁이었다.
그렇게 일 년 반 동안 동문밴드에서 삐끼용 글을 써나갔다. 그리고 집행부 임기가 끝났다. 떠날 때는 말없이, 미련 없이 떠나라는 노랫말처럼, 이제 동문밴드에 글 쓰는 게 조심스러운 생각마저 든다.
말로 수다 떨기보다 글로 수다 떠는 걸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맘 놓고 수다 떨 공간이 아쉬웠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 나눌 공간이 마땅치가 않게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내게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다.
브런치는 세상 사람들에게 나를 다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것이 약간 두렵기도 했다. 브런치는 동문밴드와는 사이즈가 다르지 않은가. 그래도 다 사람 사는 세상이다. 동문밴드에서 떨 수 있는 수다를 브런치라고 해서 못할 건 없겠다 싶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과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어느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요, 특출난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왜 나는 글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십이 년째 지구 살이란 걸 하고 있다. 내 삶이 무겁다고 느껴질 때마다 우스운 걸 찾아서 보았던 것 같다. 스쳐 지나듯 우스운 하나의 장면 같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램이 생겨났다. 지금은 철학을 공부하지만, 만화책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크게 한번 웃고 지나갈 수 있다면, 글쟁이로서 더 이상 바라지 않기로 했다.
고통이 깊어지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슬픔이 깊어지면 차라리 웃음이 난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세상에 어떤 일도 다 견딜만해진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고 노래 부르던 지디의 노랫말이 아니어도, 이 우주엔 영원한 것도 절대적 진리 같은 것도 없다.
집 짓고 살다가 허무는 것처럼, 나의 글도 마찬가지다. 그저 잠시 몇 줄의 문장으로 구성했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스운 글을 쓰기로 했다.
우연히 시골길을 가다가 우스운 나의 글 정자에 잠시 들러 누구는 쏟아지는 태양을 피해 가기도 하고, 누구는 소나기를 피해 갈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시골길 정자는 머무는 곳이 아니다. 여행자들에겐 아주 잠시 잠깐 쉬어가는 곳일 뿐이다. 내 글에 머물지 마시길 부탁드린다. 구태여 이런 부탁드리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스쳐가실 것을 서운해하지 않는다. 브런치에선 삐끼로 살지 않겠다.
(2021년 9월 13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