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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잽 04화

#04. 미스터리한 3분, 30초, 그 시간의 소중함

by 파라미터

관장님이 내게 말한다.

“체력이 좋아졌습니다.”

“정말요? 아직 아닙니다.”

“3분이 지났는데도 숨을 헐떡이지 않잖습니까.”


오호! 하며 깨닫는 사이 복싱 타임벨이 ‘땡’하고 울린다. 30초의 휴식이 끝나자 다시 관장님이 내미는 미트를 부지런히 받아친다. 그렇게 또다시 3분은 빠르게 흘러간다.


한때는 ‘3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고, ‘30초’는 가장 짧은 시간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많다.


3분. 복싱 이전에 나에게 ‘3분’이란 그저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 정도였다. 배가 고플 때는 그 기다리는 3분이 길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눈빛으로 라면을 익힐 것도 아닌데 컵라면 뚜껑을 뚫어지게 보며 무심히 3분을 보내거나 (대체로 3분이 되기도 전에 뚜껑은 열리지만), 부산한 움직임으로 3분을 허비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일상에서 나의 ‘3분’은 어쩌다 인식되는 스치는 시간이었을 뿐, 대체로 ‘24시간’이라는 뭉치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사라진다.


하지만 복싱에서 나에게 ‘3분’이란 …… ‘부족한 나를 채워가는 시간’이라고 거창하게 꾸며 얘기하면 좋겠지만, 적응하기 전까지는 그저 지치고 힘든 시간 ‘이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포기하고 싶은 시간.'


줄을 반복해서 돌리며 뛰는데도 3분은 끝나지 않고, 허공을 향해 수없이 주먹을 날리는데도 3분은 깨지지 않고, 샌드백을 부지런히 치는 것 같은데도 3분은 왜 오지 않는 것인지.


'길고 긴 3분'은 미스터리였다. '아직도 3분이 종료되지 않았냐' 고 속으로 툴툴거리며 힘들게 헉헉대고 있을 때, 관장님이 툭 던지는 한마디.

이러면서 3분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집중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그 '3분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전에 그저 ‘3분’이 빨리 지나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그러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바로,

땡!


냉정하고 시니컬하게 울리는 3분 종료를 알리는 복싱 타임벨, 땡! 그 차가운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쉭쉭’ 거리는 호흡은 제대로 뱉지 못하면서 ‘땡!’ 소리에는 ‘휴~’하는 기쁨의 한숨이 진심으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내게 주어진 단 ‘30초’의 시간이 달기도 달다는 것을 깨달을 때, 다시 ‘땡!’하고 타임벨이 울렸다. 30초 휴식은 순식간에 끝났다. 3분과 30초의 갭이 어마어마하게 벌어진 순간, 다시 관장님이 툭 던지는 한마디.

이러면서 30초의 소중함도 깨닫게 됩니다.

인정! 확실히 인정. 30초는 너무 소중했다. 너무 소중해서, 30초가 또 30초가 되고, 다시 30초가 되었으면 했다. 이때만은 땡! 이 들리지 않기를 바랐지만 '땡'소리에 스르륵 다시 움직였다. 복싱 타임벨의 자극에 무조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니!


결국 어떤 시간이든 다 소중한 것이었다. 종종 1분 1초가 아깝다는 흔한 말을 하지만, 역시 말과 생각에 머물 때가 많았다. 그 짧은 시간을 길게 활용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날마다 진심으로, 체감하게 해 준 것이 복싱이었다.


운동에 적응해 갔다. 내가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길기만 했던 ‘3분’은 너무 짧아졌고, 움직이면 움직이는 만큼 ‘3분’은 오롯이 내 것이 됐다.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3분’이 쌓여갈수록 성취감도 쌓여갔다. 3분으로 만들어가는 마법처럼.


오늘도 집중하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3분이 되기 전에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땀에 잠시 희열을 느끼면서 말이다. 관장님이 한마디 툭 던지며 지나간다.

계속 움직입니다. 3분 내내 움직입니다.

나의 대답은 거친 호흡을 뱉으며 주먹을 뻗는 것이다. 곧, 냉정한 벨이 단호하게 울리고 다디단 휴식이 찾아올 것을 알기에 더 부지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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