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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잽 05화

#05. 나를 지탱하는, 자세

by 파라미터

가끔, 관장님이 내게 묻곤 했다.

“운동은, 뭐다?”

“자세?”

“네, 운동은 ‘짜세’입니다.”

그 질문을 받을 때면, 나의 기본자세는 엉성했다.


운동은 ‘자세’라고 한다. 자세가 좋아야 정확하고 빠른 동작이 나올 수 있다. 거기에 스스로 보기에도 자세가 멋있으면 운동할 맛이 난다는 거다. 그래서 기본자세를 제대로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


기본자세 중 처음은 하체에 중심을 잡는 것이었다. (오른손잡이로서) 왼쪽 하체에 중심을 두고 오른발 뒤꿈치 들고, 두 발의 일정한 간격(스탠스)을 유지하는 것.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움직이는 순간 자세는 금방 무너졌다. 힘은 없고 내 몸의 무게만 잡아먹는 몹쓸 하체는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바닥을 지탱하는 힘이 단단하지 않으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라는 뻔한 사실을 매번 각인시켜 주는 자세였다. 하긴, 단순하면서 단단하고 동시에 유연한 동작이 그리 쉬울 리가 없다.


서두르지 않았다. 기초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중도에 그만두기도 쉽고, 계속 나아간다고 해도 나중에 바로잡기는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글 쓰면서 절실히 느끼는바. 게다가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변화도 유연하게 할 수 있고, 대처할 수도 있다.


내가 기본자세에 힘을 쏟을 당시, 복싱을 처음 배우는 어린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은 확실히 배움이 빨랐다. 내가 그들보다 더딘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애초에 경쟁상대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휘청거리는 나란 존재는 그들 안중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의 빠른 성장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뿌듯했다. 문제는 같은 동작을 반복하여 지루함을 견디는 것이었다. 견디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방도가 없다. 그냥 꾸준히 하는 수밖에.


그렇게 기본자세를 반복하고 교정하며 한두 달 지났을 때였다. 같이 작업하던 작가님이 내게 말했다.

“전에는 젤리 같아서 안쓰러웠는데, 요즘은 달라 보이네.”


고민할 것도 없이 수긍이 갔다. 흐물거리는 지렁이 젤리 같은 모습에서 조금씩 단단한 인간이 되고 있었다. 결코, 적지 않은 변화였다.


지금도 가끔 자세 지적을 받는다.(아마 계속될 것이다.) 기본자세가 또 흐트러진다. 다리의 폭은 넓어지고 스텝도 일정하지 않다. 관장님이 외친다.

“무게 중심이 자꾸 뒤로 밀립니다, 왼쪽 하체에 중심을 두고 단단하게!”


처음 자세를 배울 때처럼 타이어 위에 올라선다. 중심을 잃으면 타이어 밖으로 밀려난다. 정확히는 떨어진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하체를 단단히 하고, 휘청거리면 또 자세를 잡는다. 바닥을 단단하게 지탱하며 바른 자세를 스스로 찾아 깨우쳐 간다. 이것이 복싱의 자세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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