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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잽 07화

#07. 세상의 공격을 대하는 부드러운 처세, 위빙처럼

by 파라미터

관장님 손에 든 두 개의 미트를 피해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좌우로 움직인다. 관장님이 칭찬한다.

"역시, 부드럽게 피하는 걸 제일 잘합니다."

피하는 것만 잘한다는 것일까?

"잽잽, 잽잽투 …쓱, 쓱."

나는 피하면서 속으로 대답한다.

'피하는 것만 잘하게 된 것도 어딥니까.'


공격도 어렵지만 방어의 기술 ‘위빙’을 익히는 것도 어려웠다. 무릎을 굽혀 공격을 피하는 위빙은 머리와 상체를 “U”자 형태로 부드럽게 움직이면서도 하체가 상체를 잘 지탱해야 했다. 관장님이 시범으로 보여준 ‘위빙’은 내 눈에는 굉장히 ‘부드러운 춤’이었다.


하지만 나의 위빙은 그렇지 못했다. 관장님이 빨간 스틱 두 개를 들고 내 머리 위를 좌우로 지날 때마다 방어하는 나의 동작은 뻣뻣했고, 몸은 휘청거리기 일쑤. 관장님의 설명을 듣거나 시범 동작을 볼 때는 머리로는 입력이 되는데 몸으로는 제대로 출력이 안 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위빙’은 부드러운 ‘U’가 아닌 딱딱한 ‘⨆’. 휴머노이드 로봇보다 못한 나의 동작으로 공격을 피하다가는, 피하기도 전에 맞고 박살 나기 딱 좋은 자세였다. 공격도 젬병, 방어도 젬병. 하지만 관장님의 강조대로,

연습하면 됩니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연습 장소는 사각의 ‘링’. 절대 좁지 않은 넓은 세계, 그 링 위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로프를 따라가며 원투를 날리고 로프가 머리에 닿지 않도록 움직이며 방어한다. 좌우로 번갈아 가며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다. 하체에 중심은 필수, 부드러움도 필수, 그래야 공격도 바로 나온다.


부드럽게 잘 피하는 것. 그 부드러운 방어가 쉽지 않다는 것은 살면서 느낀다. 크건 작건 내가 ‘(불합리한) 공격을 받는다’ 느끼거나 경험하는 순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분노와 실망, 그리고 상처를 얻는다. 그렇다고 맞설 능력이 되지 않는데, 무조건 맞서는 것도 무리다. 우선 부드럽게 방어하고 실력을 키우며 기회를 엿봐야 한다. 말이 쉽지, 그러다 속부터 터질지 모르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나는 세상의 공격에 방어를 잘하고 살았나? 굳이 복기해 보자면… 어릴 때는 무모하게 맞섰고, 성인이 되어서는 맞서다가 점점 더 무심해졌고, 그러다 피할 힘도 없는 무기력에 이르면 결국 상처로 끝났다. (사실, 공격에 부드럽게 대처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는 줄 알았는데, 갱년기라는 열 뿜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왜 부드러운 처세에 약했던가. 성격은 기본. 우선 '공격'의 성향파악이 서툴렀고, 공격에 따른 ‘부드럽게 처신하는’ 적절한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알았다고 해도 절로 능숙하게 발현되도록 연습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건강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공격’의 성향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도 유연하게 피하는 방어 기술도 나를 받쳐줄 건강한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복싱의 방어 기술을 익히면서 다시 깨우쳐 간다.


다시 관장님의 미트가 빠르게 움직이고, 나는 또 공격을 피한다. 관장님이 빠르게 말한다.

"더 빠르게 피합니다. 느리게 피하다가는."

"윽!"


어설프게 피하던 순간, 미트가 내 얼굴을 스쳤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나는 이미 녹다운 됐을지도 모른다. 잠깐의 아픔을 참아내고 다시 하체에 중심을 두고 상체를 부드럽고도 빠르게 움직여 공격을 방어한다. 좋은 자세로 왼쪽 ‘위빙’이 되는 순간, 레프트 훅이 제대로 날아간다.

부드럽고도 빠르게 피하고 반격을 노리는 것, 그게 핵심이다.

세상의 공격을 대하는 부드러운 처세, 위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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