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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잽 09화

#09. 어깨의 힘, 내려놓기

by 파라미터

복싱을 배우면서 생애 최초 시도한 운동 중 하나가 ‘벤치프레스’였다. 거북목, 라운드 숄더, 어정쩡한 자세, 힘없는 상체의 근력을 조금이라도 보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처음부터 바벨을 드는 것은 무리였기에 바벨도 없는 빈 바를 올려보기로 했다. 시도는 좋았지만, 빈 바를 드는 것도 힘들기는 했다. '끙끙'거리는 내가 굉장히 우려스러웠던 모양이다. 관장님은 나의 자세를 교정해 주며 잠시 지켜보더니 본인의 어깨와 가슴을 툭- 툭- 치며 내게 물었다.


"어디에 힘이 들어갑니까?"

"(빈 바를 힘들게 들며) 얼굴-이-요!"

"아 ------"

"(도대제 이 무거운 걸 왜 드는 거야...!)"

"그래도 할만합니까?"

"(설마요ㅠㅠ) 말 시키지 마세요…."


그렇게 상체에 제대로 힘을 주지 못했던 내가, 복싱할 때는 어깨에 힘이 계속 들어간다. 힘을 주라는 하체는 힘이 빠지고, 힘을 빼라는 어깨에는 계속 힘이 들어가면서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기 일쑤다. 왠지 그래야 팔을 뻗을 때, 강한 주먹이 나올 것 같은 착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힘 빼고 싶은데, 저절로 힘이 들어가요."라고 말하자, 관장님이 대꾸한다.

"능숙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어깨에 힘을 내려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어깨에 계속 힘이 들어가면 패하기 쉽습니다. 힘이 들어갈수록 공격 기회가 왔을 때 자유롭게 공격할 수 없어요.


물론, 내가 링 위에 올라 경기를 뛸 확률은 거의 '0'에 가깝지만(근데 인생은 또 모른다) 어깨에 힘을 빼는 것은 복싱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에서도, 그리고 보통의 일상에서도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말이다.


일상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는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할 때다. 나의 경우도 그렇다. 예민함의 극치를 떨 때 몰려온 스트레스나 긴장으로 목과 어깨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로 인해 목과 어깨 견갑골 내측 통증까지 십수 년 동안 자주 겪는 일이었다.


돌아본다. 최근 심한 통증을 겪었던가……. 오, 거의 없다. 물론, 스트레스는 여전히 달고 살고 가끔 긴장할 때도 있지만, 병원을 찾을 만큼은 아니다.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전에 복싱으로 자연스럽게 풀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또 힘이 들어갈 때는 목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권위’ 있는 척 내세우려고 할 때다. 소소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 이상으로 심하게 폼 좀 잡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당장 ‘힘을 빼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다양한 관계를 맺는 인생을 경험하면서 목과 어깨에 잔뜩 준 힘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결국은 깨닫게 되는 것 같다.(아닌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라고 자문하면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살면서 목에 힘주고 어깨에 힘주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내가 아니라고 해도, 어떤 시기 어떤 상황에서 참 별것도 아닌 것에 괜히 힘을 줬을 가능성,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누군가 그렇게 보고 느꼈다면 더욱더. 그건 마치 내가 목과 어깨에 힘을 주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그걸 알아채는 관장님의 시선과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제대로 인정받는 권위는 목과 어깨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텐데.


복싱은 나를 일깨운다. 내가 바닥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으면 굳이 어깨에 힘을 주지 않아도 상대가 인정할 만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도 가끔 어깨에 힘을 주자. 낙심하고 기운이 떨어질 일을 경험했을 때 잠시 어깨가 축 처지더라도 금세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단단하게 키우고 싶다. 결국, 스스로 힘을 키우고 조절하는 것이 능숙해지는 것이 중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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