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4일
얼마 전, 교토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세 번째 교토 방문. 이번 여행에서 꼭 가보기로 한 곳이 도시샤 대학인데, 그곳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찾아갔더니 마침 겨울 방학이라 교정은 조용했다. 그리 크지 않은 학교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비에는 <서시>가 우리말과 일본어로 새겨져 있다.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너무나 유명하고 나도 좋아해서 한때는 외우고 다니기도 했던 시인데, 종이로 된 시집이 아니라 이곳 일본의 교토에서 돌에 새겨진 그 시를 다시 읽는 감흥은 각별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시인이지만, 살아생전에 시집 한 권 내보지 못했고 죽고 난 후에야 몇 편 되지 않는 시들을 모아 겨우 한 권의 시집을 냈을 뿐인 시인. 거기에는 채 완성하지 못한 습작 같은 시들도 있다. 지금 윤동주가 살았다면 그 정도의 작품들로는 아마도 등단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시인 윤동주를 부정하지 않고 깎아내리지 않는 것은 그 자신이 온몸으로 시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다가, 결국은 다른 곳도 아닌 일본에서 식민지 젊은이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속에 마감한 인생은 그 자체로 ‘시’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그가 남긴 약간은 미숙한 시들은 우아함이나 세련됨도 모자라고 문학적 탁월함도 느끼기 어렵지만, 그 자신의 고뇌와 성찰이 가득하다. 자신만의 진정성으로 끝내 독자의 마음에 와서 닿은 것이다. 20 세기라는 시대가 가져다준 낭만성과, 작품과 인생이 하나로 만나는 진정성이, 해방 후 80 년이 다 되어가도 여전히 혼탁한 이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대체재가 없는 감동으로 남게 되었다.
윤동주 시비를 찾는 것에 더해, 도시샤 대학을 찾아와 봐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윤동주 시비와 나란히 서있는 정지용 시인의 시비에 있다. 여기서 시인 정지용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시비에 새겨진 시는 꼭 이곳 교토에서 읽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의 제목은 <압천>. 바로 교토의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카모강을 뜻한다.
<압천>
정지용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믈어...... 저믈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떠ㅅ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鴨川 十里ㅅ벌에
해가 저물어......저물어......
정지용은 윤동주보다 좀 더 앞서 도시샤 대학으로 유학을 왔었고 그는 윤동주와는 달리 별 일없이 학업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갔다.
<압천>이라는 시에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나 조국을 빼앗긴 청년의 울분 같은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중고등학교 국어 수업에서 처럼 해석하자면 억지로 그런 요소를 꿰어 맞출 수 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저 외국(이면서 왜국)에 유학온 한 젊은 이방인의 감수성만 가득 보인다.
교토 여행을 올 때면 걷거나 버스를 타고 카모강을 건널 때가 있는데, 주로 기온과 가와라마치를 잇는 시조오하시(시조대교)를 건넜다. 시조오하시를 걸어서 건널 때면 언제나 다리 중간에 서서 강물이 흐르는 걸 내려다보곤 했다. 사실 강이라 하기엔 넓지도 않고 깊지도 않아 차라리 개천에 가까운 카모강이지만, 그럼에도 특유의 소박하고 정감 가는 분위기로 보는 이의 마음과 시선을 붙잡는다. 어떨 때는 아예 다리 아래로 내려가 강가를 거닐며 마치 이곳이 여행 중에 지나가는 경로가 아니라 그날 일정의 목적지인 양 오랜 시간 머물기도 했었다. 사람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은지, 마침 그중 한 사람 정지용이라는 시인이 있어 멋들어지게 카모강의 정취를 글로 남겼으니, 정말 고맙지 않은가.
시인이 유학 시절 수없이 걸었을 카모강 가에서 느낀 어느 저녁날의 정서를 그림처럼 눈에 선하게 써 내려간 <압천>을 천천히 읽고 나서, 그 느낌을 고스란히 마음에 담은 채 시조오하시 위에 서보고, 그다음 강가로 내려와 흐르는 강물과 눈높이를 맞춘 다음 다시 시를 떠올리면, 아주 잠시지만 시인이 강을 바라보며 서있었을 그 자리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이 시를 몰라도 충분히 좋은 카모강이지만 정지용의 <압천>을 알고 나면 더욱더 좋은 카모강.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압천 십릿벌에
해가 저물어……저물어……’
마지막 두 개의 연이 특히나 마음에 와닿는데, 몇 자 되지도 않는 몇 마디 말로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는 듯하다. 비가 올 것 같은 저녁 강가에 외로이 서있는 한 남자. 마치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려진 저녁 풍경 위에, 에드워드 호퍼가 즐겨 그렸던 외롭고도 쓸쓸한 인물 하나가 무슨 맛인지 도통 모를 오량쥬(오렌지) 껍질을 우물거리며 서있는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언제고 다시 교토를 찾게 되면 저녁 시간을 비워 두었다가, 오렌지도 하나 준비해서, 카모강 가를 서성이며 백여 년 전 그가 걸었던 그 길의 발자국을 뒤따르고 싶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