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9일 - 계엄을 바라보며1
그날 밤엔 정말 이상한 경험을 했어.
일이 있어 많이 늦게 집으로 가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톡이 오더라. 톡을 열었더니 신문 기사가 하나 링크되어 있었어.
[속보]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계엄”이라니, 놀랍다던가, 두렵다던가 하는 감정에 앞서 참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구나,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열어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어. 유튜브에서는 국회의사당 안과 밖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계엄 선포’ 못지않게 계엄 저지를 위한 시민들과 야당 의원들의 행동들도 한 편의 비현실적인 영화처럼 느껴졌어. 무장한 차량을 맨 몸으로 막고 둘러싼 시민들, 경찰과 군인을 피해 국회 담장을 넘어가는 국회의원들, 진입하려는 군인의 총부리를 붙잡고 있는 어느 여인, 본회의장 건물 안에 걸상, 책상으로 벽을 쌓고 있는 보좌관들의 모습이 그 짧은 시간에 마치 편집한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고 있었어. 한두 시간의 짧은 시간 안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단 한 발의 총성도, 한 명의 부상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하기 짝이 없었어.
결국 계엄 해제를 의결하는 모습에 크게 안도하고 마음이 차분해졌지.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또 다른 이상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그때 틈틈이 읽었던 책 때문일 거야.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이 책에 대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왜 하필 이 소설을 읽던 이 순간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맞닥뜨린 현실의 계엄은 더 이상 하룻밤의 해프닝으로만 여기고 넘어갈 순 없었어. 왜냐 하면 바로 동호 너를 알게 되었거든. 그리고 45 년 전 그날 그곳에 있었던 많은 이들을 알게 되었거든. 물론,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대학생 시절부터 책도 찾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참혹한 사진들도 보면서 알만큼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소설의 관습적 인칭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문장들을 통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주었기 때문이야. 바로 그곳에서 동호 네 옆에, 또 많은 이들과 함께 서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야.
5월의 눈부신 햇살과 싱그러운 공기가 오히려 더 무겁고 슬프게 내려앉은 그곳에서 두려움과 절망, 분노와 비통함, 그리고 그것들을 딛고 올라오는 정의를 향한 갈망과 서로에 대한 연대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어. 비록 그때는 좌절하였고 죽은 자와 산자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지.
그리고 45년이 지난 지금,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비극이 한 번 더 일어나려고 했어.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을 것 같아.
그날 이후, 국회 앞 대로에는 그 추위에도 밤마다 시민들이 모였어. 모여서 누구 할 것 없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손뼉 치고 격려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어. 마지막엔 응원봉을 흔들며 <아파트>, <슈퍼노바> 같은, 시위에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는 반짝이는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 45년이 지나 바퀴벌레처럼 다시 기어 나온 저들의 도발에, 이제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없어. 절망도 슬픔도 없어. 무모한 저들에게 우리의 작은 행복과 소중한 가치를 내어줄 생각이 전혀 없음을, 단호한 결의만을 그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이상하게도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동호 너의 모습을 본 것 같아. 사실 난 네 얼굴도 몰라. 하지만 국회 앞 대로에 모여 있는 시민들 사이에 네가 서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어. 무대 위에서 격정적으로 말하는 10대 학생 곁에, 그 학생에게 환호하는 시민들 속에, 국회 앞 인도에서 조용히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앞에, 그리고 어쩌면 가장 당황스러웠을 군인과 경찰들 옆에도 네가 서있는 것을 느꼈어. 동호 네가 결국 총에 맞았을 때, 먼저 영혼이 되어 있던 정대가 아주 멀리서 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너를 느꼈던 것처럼 그렇게 시민들 사이에 ‘네가 왔구나’ 느꼈던 거야.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을 너의 존재를 2024년의 겨울밤에 비로소 바라볼 수 있었던 거야.
시민들 사이에서 너는 좀 놀랐을지도 몰라. 걱정하는 마음으로 여기 왔겠지만 아무도 총을 들고 있지 않고, 아무도 죽고 다치지 않은 모습에. 아무도 슬퍼하지 않고 끝내는 탄핵 가결에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동호야, 어쨌든 우리는 이만큼 왔어. 긴 시간이었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여기에 이르렀지. 너를 다시 오게 한 이 상황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또 조금은 안심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아 좋은 마음도 약간은 생겨. 네가 어디에 머물든 이제는 조금 편해졌으면 좋겠어. 아마도 곁에 계실 어머님의 손도 꼭 잡아드리고. 당신의 인생이 너의 장례식이었던 그분과 이제 곧 꽃이 필 중흥동 골목길을 같이 걷길 바라.
동호야, 고마워.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