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망 Jun 10. 2024

나중에 라는 말의 정의

열일곱 때의 감성

“잘 지냈어? 생일 축하해.”

“어 고마워. 너도 잘 지내지?”

“응 나야 잘 지내지. 매일 똑같아.”     

고등학교 때 친구인데 출산 후에 가끔 연락만 하고

13년째 생일 때 기프티콘만 주고받는 사이다.


“그래. 우리 얼굴 함 봐야지.?”

“응 그러게. 잘 지내고 나중에 봐.”     

나중에라는 말은 어쩌면 “너의 근황은 궁금하지 않아”

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궁금하지 않은 너의 근황’에 형식적인 메시지만 보내게 됐다.


그런 시간이 많아질수록 연신 서로에게 “잘 지내지?”

“잘 지내.”라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반복적인 말만 계속하게 됐다.    



 이번 나의 생일에도 어김없이 기프티콘 메시지가 도착했다.

“잘 지내지? 아이들과 즐겁게 보내. 함 보자.”

“난 잘 지내고 있어. 우리 10년째 이렇게 문자만

주고받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얼굴 보자.

넌 언제 시간 되니?”


구체적인 시간을 묻는 말을 하니 핸드폰에서

생기 가득한 답글이 도착했다.

“어. 난 화요일이랑 목요일이 아이가 학원 가서 늦게 와.

 밥 먹고 차 마실 수 있어!”

“그래? 그럼 이번 주 목요일 일찍 강남역에서 보자.

 나도 애들 학교 보내고 바로 출발할게.”


약속을 이렇게 빨리 잡을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10년간 형식적인 메시지만

성실하게 보내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언젠가 보자. 한번 보자”란 기약 없는 약속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예의상 하는 말도 나답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과의 비즈니스적인 교류는

나의 결과 맞지 않는다.

그런 자리를 찾지 않으니 주변 인간관계는 점차 좁아졌다.     


만나지 않았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저 멀리서

친구의 낯익은 얼굴을 확인했다.

10여 년만의 만난 우리는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정말 하나도 안 변했어. 예전과 똑같은데?.”

“너도 그대로야.”

누가 봐도 나이 들어 보이는데 서로의 외모에

 예의를 다하는 칭찬을 들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놀라서 다시 쳐다보겠지.


서로를 기억하는 추억의 단어인 “그대로야”를

반복적으로 쓰는 이유는 그때의 그 감성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교 시절 우리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어서

늘 쉽게 연락해서 만날 수 있었다.

각자의 시간에 충실해지는 어른이 되어갈수록

서로의 분주한 일정에 먼저 다가가기가 힘들어졌다.


‘바쁘겠지.’

‘만나자고 했다가 나중에 보자고 하면 무안하잖아.’

‘이젠 거리도 너무 멀어졌으니까.’

친구의 연락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생각이 점점 많아졌다.

그런 시간이 늘어날수록 서서히 연락이 뜸해졌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조심스러운 어른이지만, 오늘은 열일곱 때의 감성을 기억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서먹한 시간이 지나고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친구가 말했다.

“살이 많이 쪘어. 주름도 흰머리도 많아졌지.”

“살은 나도 뭐 많이 쪄서, 서로 못 본 거로 하자.”


커버력이 뛰어난 주름 개선 크림을 사러 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전 11화 인생의 조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