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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Jun 28. 2024

똑같은 상황이 아니면 상대가 이해되기 힘든 것처럼

모처럼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서울 나들이하러 간 날,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이번에 새로 산 아이패드를 보여주었다.

    

“나 요즘 아이패드로 작업하고 있는데 좋더라고.”

“나도 맥북으로 컴퓨터 바꾸고 싶었는데 하던 일이 잘 안 돼서 못 샀지 뭐야.”     

부러움이 뒤섞인 말에 친구는 한마디를 던졌다.      


“주부로 있으면서 비자금 그런 거 준비해 둔 것도 없어?”     


친구의 무심코 뱉은 말에 기분이 상하는 나였다.     


 “빚 갚느라 그럴 여유는 아직 없어서.”     


물음에 답을 하는 내 목소리가 점차 가라앉았다.

나를 무시해서 건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없어? 없어?? 친구의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돌면서 한껏 부풀어진 초라함에 움츠러들었다.


결혼과 육아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가정을 꾸리는 게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지 헤아리지 못한다.

반대로 내가 혼자 사는 여성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막연하게나마 외로운 생활을 짐작하지만, 그 현실을 낱낱이 알기는 어렵다.     


외동을 키우는 엄마가 다자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 힘든 것처럼, 같은 처지와 상황을 경험해 봤을 때야 

비로소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말도 할 수 있다.      


결혼 전에는 내 중심이 되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거라고 막연히 꿈꿔왔지만, 실제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로 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다.

주부로 차곡차곡 쌓아온 그 시간이 나도 모르게 한심하게 느껴져서 속상했던 걸까?     


타인을 배려한다는 건 어쩌면 그 상대의 상황에 대한 첨언을 안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키가 작은 아이를 신경 쓰고 있는 엄마에게     


“우리 애는 자꾸만 커서 걱정이에요. 이제는 영양제를 끊어야 할까 봐요. 호호.”     


“여태까지 남자친구 안 사귀고 뭐 했어?”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 가봤다는 게 말이 돼?”

“그 나이까지 그럴듯한 취미 하나 없는 게 진짜야?”     


이런 말들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상황에 대해 넘겨짚는 말이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 가끔 잊어버릴 때가 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늘 피로감에 시달리고 살았던 때에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친구와 통화했다.    

 

“너처럼 아이 키우는 게 지금 내가 하는 일보다 훨씬 쉽고 편해 보여. 정말 부럽다.”

    

나를 배려하지 않는 말을 들을 때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때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말을 못 했는데 생각할수록 예고 없는 소나기를 맞은 기분처럼 찝찝하고 억울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 답답한 마음에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친구야. 육아하며 피로에 파 뿌리 되고 순간순간 우울함에 눈물 한 바가지 쏟아보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단다. 너처럼 너 하나만 생각하며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편안하고 즐거울까? 생각만 해도 설레여.’     


허공 속에서 마음의 소리를 내뱉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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