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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Aug 26. 2024

기다림의 미학


오랜만에 대학 동기와 만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이거든. 다들 비슷한 시기에 출산해서 아이들 나이도 같아.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너무 잘 파악하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좀 멀어졌어. 나에게 말하는 조언들이 피곤하고 꼰대같이 느껴져. 한마디로 듣기 싫은 거지. 아이 교육관도 나랑 너무 다르더라. 그래서 전보다 자주 보게 되지 않더라고.”     


어렸을 적 우리만 생각하며 만났을 때는 애틋한 감정이 가득했다.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일수록 상대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판단해서 내린 조언은 타인에게 반감을 줄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본인이 알고 있는 모습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상황이 잦아질수록 마음속 불편함이 점차 켜져 갔다. 무심코 하는 말이 타인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넌 그게 잘못됐잖아. 그런 건 좀 아니지.”

“왜 그렇게 행동해? 그러면 나중에 너만 후회해! 다 널 위해 하는 소리야”

“그런 걸 왜 해? 정말 이해 안 된다.”     


본인이 현명한 방법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최선이었다는 것을 타인이 알게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친구에게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버린 건, 애쓰고 있는 본인의 현재 상황을 세심하게 헤아려 주지 못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상황과 여건이 달라지면서 친했던 관계가 점점 멀어지거나 연락이 끊어지는 상황이 생겼다.     


“반복적으로 조언 듣는 것도 피곤해. 점점 할 얘기가 없어지니 겉도는 이야기에 마음이 불편해지더라고. 그래서 요즘은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어졌어.”     


가득 채운 술잔에 그늘진 친구의 얼굴이 드리워졌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면 한동안 거리를 두고 지낼 필요가 있다.


 너의 얄궂은 말들로 인해 나의 꿍한 성미가 조금씩 무뎌질 때쯤엔 함께 웃던 지난날이 어렴풋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 기억의 편린이 점점 선명해질 때 너를 맞이할 여유로운 공간이 생길 테지.


 시들어진 인연이 있다면 활짝 피어나기 위해 애쓰지 말고, 그냥 그 자리에 두자.     


지금의 친구가 내 여건과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존재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인생 여정에서 항상 마음에 맞는 사람들로만 채울 수 없기에 먼저 내 감정이 안온해지길 기다려야 한다.


긴 시간이 흘러 파도친 나의 마음이 잠잠해질 때쯤 그 모습 그대로 웃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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