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parang
그 말을 처음 들은 건 겨울이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오후, 작은 성당에서 들은 얘기
그날따라 세상은 유난히 조용했고
따뜻한 난로 곁에 앉아 노신부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사랑을 안다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은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연애도 해봤고 부모님도 사랑하고…”
순간 노신부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그랬어요.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이 걸렸다고.”
그날 이후, 그 말은 내 마음속에 조용히 둥지를 틀었다.
어릴 적 사랑을 배움이라 여겼다.
책에서
드라마에서
교과서 속에서
사랑은 언제나 정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것”
“사랑이란 조건 없이 주는 것”
그 문장들을 잘 외웠다.
시험지에 써 내려가며
사랑을 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
어머니의 손가락이 굽어지는 걸 보고도
무심히 방으로 들어간 내가 있었고
친구의 눈물이 불편해 외면했던 기억도 있었다.
그 순간마다
머리는 사랑을 말했지만
가슴은 여전히 낯설어했다.
스무 살, 첫사랑과 이별하던 날엔
결국 “사랑은 고통”이라 결론지었다.
그때는 몰랐다.
사랑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마저 껴안는 마음이라는 걸
조금 알 것 같았다.
왜 김수환 추기경은
그 말에 ‘칠십 년’이라는 세월을 붙였는지
사랑은 머리로 이해한 후에도
가슴으로 느끼기까지
천천히
아프게
조용히 스며드는 것이니까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을 때
그럼에도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생길 때
내가 옳다는 생각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순간이 올 때
그때
비로소 사랑은
내 안에 내려앉는다.
칠십 년이 걸려도 좋다.
사랑을 아는 데 평생이 걸려도 좋다.
길 끝에서
누군가의 아픔을 조용히 안아줄 수 있다면
삶은 이미
축복받은 것이니까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