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이유 없는 불안을 꾹꾹 눌러오던 때가 있었다.
아빠는 내가 부끄러워한다며 늘 어른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게 했다.
그럴 때면 가슴은 콩닥콩닥,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싫어도 억지로 해야 했다.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으니까.
우리 집은 노래방을 자주 갔다.
아빠는 늘 마이크를 쥐고 사회자처럼 분위기를 이끌었고,
나는 자연스레 그 모습을 닮아갔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언제나 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차피 나도 외향적인 기질로 자랐을 텐데,
왜 하필 가장 미약했던 시절에 자꾸 시켜야 했을까?
부끄럽다고 말하는 내 마음을, 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작은 부끄러움과 떨림이 불안이라는 감정의 첫 얼굴이었다는 걸.
코로나 시절, 강사인 나에게도 암흑기가 찾아왔다.
강의는 하고 싶은데, 무대가 사라졌다.
그때 ‘비대면’이라는 낯선 단어와 마주하게 되었다.
줌(Zoom)을 배우고, 수업을 기획하고, 도서관 강의에 지원했다.
드디어 첫 비대면 강의를 하게 되었지만, 그날의 나는 공허한 침묵 앞에서 무너질 뻔했다.
학부모 교육이었지만, 화면을 켠 분은 단 두 명뿐.
나는 벽에 시나리오를 붙여놓고도 성대가 떨렸고,
예정했던 내용을 통째로 잊어버려 머리가 새하얘지는 ‘화이트아웃’을 겪었다.
수업을 망쳤다는 수치심과 두려움.
어떻게든 시간을 채워보려 “질문 있으신가요?”를 반복하며
마지막 간절함을 담은 시선을 던졌다.
그때, 조용히 화면을 켜고 있던 한 학부모님이 음소거를 해제하며 말했다.
“선생님, 안보이는데서 수업하시려니 힘드시죠?
저는 오늘 집에서 이렇게 강의를 들을 수 있어 정말 좋았어요. 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질문에 답변하다보니, 나는 잃었던 목소리를 다시 찾았다.
불안과 공존하는 법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
· 나에게 말 걸어보기
“너 지금 떨고있니...? 이건 나한테 중요한 순간이야.”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이 첫 걸음이다.
· 나만의 루틴 만들기
강의 전, 찬 물 한 잔을 마시고
“나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라고 속으로 되뇌인다.
작은 루틴이 나를 지켜주는 심리적 안전장치가 되어준다.
· 실수에 너그러워지기
블랙아웃이든 화이트아웃이든 괜찮다. 내 실수는 나만 안다. 듣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완벽한 강의가 아니라, 진심이 전해지는 강의가 더 오래 기억된다.
실수는 잘 하고 싶은 나의 진심을 증명하는 사인이 될 수 있다.
예전엔 불안이 부끄러운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불안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거다.
“지금 이 순간이 너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그러니 준비하고, 숨 한번 크게 쉬고, 네 안의 목소리를 꺼내보자.”
이제 나는 불안을 몰아내지 않는다.
그저 나와 함께 걸어가는 손님으로 맞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