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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강사 Oct 14. 2022

부모가 위대한 이유    

부모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스킬

나는 아이들도 만나고 그 아이들의 부모도 함께 강의한 적이 있다.

놀라운 것은 내가 본 아이들의 수업태도와 그 부모의 수업태도가 비슷했다. 아니 거의 똑같다. 산만한 아이의 부모는 산만하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아이의 부모는 끝까지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중간에 메모하는 아이의 부모는 메모를 한다. 정답을 맞히려 노력하는 아이의 부모는 끝까지 답을 맞히려 한다... 이런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면서, 이왕 태어났으니 한번 잘 자라 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한번 잘 키워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부모들을 모두 안아주고 싶었다. 부모 수업의 주제는 MBTI를 기반으로 한 심리유형분석 강의였다. 강의 전, 참가하는 부모들의 문의가 들려왔다.   


MBTI 검사하는 건가요?
그런 거면 저보단 우리 아이가 했으면 좋겠는데요.
...
수업 구성안이 어떻게 되나요?
...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가요?


강의 후에는 이런 후기가 들려왔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제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오늘 너무 재밌었고, 나를 알아보는 시간 정말
신기했어요~
...

부모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선생님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강의였습니다.
 

강의 전과 후의 심리상태가 달라진 부모들. 나는 퍼실리테이터로써 윤활제 역할만 했을 뿐, 내가 특별히 알려준 것은 없었다.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타인을 알아가느라 정작 나를 관찰하고 들여다볼 시간이 없을 수 있다.

그게 잘못은 아니다. 꼭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은 쉬어가는 날도 있었으면 한다. 살다 보면 이런 날 저런 날이 있듯이, 수많은 날들 중에 하루 정도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나'말고, 진짜 '나'를 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면 한다.  그날부터 누구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오기도 하고, 또 누구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반성보다는 그저 나를 알아차리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면 심리서나 자기 계발서를 찾게 된다. 나도 한 때 처세술을 보기 위해 알만한 심리서들을 우걱우걱 씹어 삼킨 적이 있다. 그런 책들을 보다 보면 모두 한 군데를 적중하며 가리킨다. 그게 바로 '나'라는 존재, 내 마음이다. 결국 내가 바뀌지 않으면 내가 사는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위대한 부모의 특징


첫째, 나의 행복이 곧 가족의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

여러 인연들을 만나다 보면 확실히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행복한 이유가 수용하는 범위가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본인의 주변이 편하지 않고 복잡한 사람들은 얼굴에 복잡한 표시가 난다. 그런데 현재 처한 상황이 어렵다 해도 얼굴에 표시 하나 내지 않고 밝은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들이 있다. 꼭 경제적인 상황이 여유롭지 않아도 내면의 여유로움은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다. 힘든 사연은 어느 집이나 다 있게 마련이다. 나만 최고로 힘들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주변 인연 중에 정말 한눈에 보기에도 귀티 나는 지인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듣고 보니 그 이면에는 상상조차 못 할 많은 고뇌와 아팠던 시련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항상 표정이 밝고 피부에는 윤기가 흐른다.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내서 인지 부부 사이도 각별하다. 자녀들은 훌륭한 대학을 나와 부모들의 로망인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인성까지 훌륭하다. 이 가족에게 무엇이 보이는가? 지인은 일찌감치 깨달았다. 힘듦 속에서도 본인이 튼튼한 다리를 지어야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너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미 멘토의 위치에 있음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개척 중이다. 그것이 그 지인의 행복이자, 가족을 위한 행복으로 가는 열쇠였다.

     

둘째, 부모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 부모복은 있어도 그다지 행복한 분위기로 자라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혼자였고, 늘 밥을 혼자 챙겨 먹고 혼자 잠이 들었다. 그래서 늘 마음 한구석이 허했다. 그건 친구들도 채워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제대로 삐딱해지지도 못하는 나는 구제불능이었다. 그때 나는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내가 싫어했던 것은 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세월이 흘러 우리 엄마가 내 아이를 돌봐주고 계신다. 엄마는 내 아이에게는 내게 했던 것처럼 하지 않는다. 나는 내면의 아이가 지금 내 아이에게 묘한 질투 감을 가진 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아이를 훈육할 때 오히려 나를 나무라는 엄마가 미웠다. 그래서 아이에게 더 세게 훈육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출구 없는 말대꾸로 나를 자극시켰다. 결국,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해버린 아이.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크게 서운했다. 그때, 아이의 할머니인 엄마가 나섰다. 엄마한테 그러는 거 아니라고. 네 엄마는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너를 낳았다고. 내 딸한테 그러지 말라고. 처음으로 내 편을 들어줬다. 나는 심장 한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이내 나한테 지난날 당신의 과오를 털어놓았다. 요즘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나를 보면서 지난날 자신을 후회한다고. 왜 좀 더 지혜롭게 너를 헤아리지 못했을까 반성한다고. 나는 그날 어린시절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젠 괜찮다고. 그분이 그냥 너의 엄마니까 좋은 엄마인 거라고. 엄마는 너를 언제나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고백으로 자연스럽게 내면 아이 치유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도 우리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고. 그건 변하지 않을 진실이라고..

부모는 아이를 가진 순간부터 사랑으로 위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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