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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부스러기 앞에.

(Part 4: 소외와 은혜)

by 향상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태복음 15:27)

― 부스러기 마저 은혜라 믿었던 여인, 그 믿음으로 버티다.




이방 여인의 대답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놀라운 대답을 내놓는다.
"옳습니다, 주여. 그러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절망 끝에서 마지막까지 붙든 예수님의 옷자락 그것은 신앙의 언어 였다.

자신을 극도로 낮추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고백이었다.

예수님의 침묵은 인간의 절망이었고, 예수님의 거절은 눈 둘 곳 없는 소외였다.
그러나 여인은 멈추지 않았다.
하찮은 부스러기라도 은혜라 믿으며, 개들조차 누릴 수 있는 은총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 고백이 굳게 닫힌 것처럼 보이던 이방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나의 이방의 자리

나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여기 오래 머물렀다.
왜냐하면, 가나안 여인이 들었던 거절의 말과 내가 지나온 삶의 경험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여성 목사라는 이름은 한국 교회 안에서 여전히 이방인의 경계에 있다.

강단에 오르지 못했던 시간들, 설교의 순서에서 반복적으로 제외되던 기억들.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연히 뒤로 밀려나야 했던 순간들.


여자 목사는 비성경적이라는 직설적인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성도들이 보낸 낯선 눈빛 앞에서 당혹스러워 고개를 숙여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동시에 내 정체성을 단단히 세운 시간이 되었다.
거절은 버티기 한판을 만드는 역전의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기회의 언어가 되었다.


부스러기의 은혜

부스러기는 하찮아 보인다.
그러나 틈은 어디에나 있다. 이삭 줍기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긴 시간 이방의 삶 속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그녀의 진지한 삶의 태도이다.

마침내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응답을 얻게 되었다.


헬라어 성경은 이 대답을 호스텔로스라고 기록한다.

"원하는 만큼, 네가 구한 대로."의 뜻이 담겨있다.

아픔을 극복하고 의지를 표현한 그녀는 원하는 만큼 보상해 주겠다는 대답을 얻어 내었다.


여성 목회자는 여전히 교회의 '비정규직' 같은 존재다.
신학적 논쟁 속에서 다시금 상처를 헤집는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역의 현장은 위로와 격려로 가득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이었다.

주님의 상에서 떨어 지는 부스러기 은혜는 원하는 만큼 가득했다.

이 섬광처럼 빛나는 응답의 언어가 오늘도 내삶을 지탱하는 생명의 떡이 되었다.


(빛은 틈을 파고들어 비추인다)




오늘의 고백

가나안 여인의 고백은 단순히 그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다.
이방이라는 정체성, 소수라는 현실, 다름으로 인해 겪는 고립과 소모.
그러나 그 자리에서조차 은혜는 부스러기로 떨어지고, 그 부스러기를 붙드는 자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나 역시 그 은혜로 버틴다.
내가 붙드는 작은 부스러기가 또 다른 사람에게 지팡이가 되기를 소망한다.
틈새로 들어오는 빛처럼,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 말씀이 가나안 여인의 고백에 대한 응답이었듯, 오늘을 버티는 나의 삶에도 주시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나는 그 선언을 믿는다.
작은 부스러기를 붙드는 자에게, 결국 상을 차려 주시는 하나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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