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있어서 집착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집착하는 마음은 나쁜 마음, 없어져야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만약 단순히 ‘집착’자체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나 나쁜 것으로 본다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혹은 설사 그렇게 집착하는 마음을 억눌러서 겉으로는 그 행동이 나오지 않게끔 노력한다 할지라도 그 일은 에너지가 아주 많이 드는 일이고 본인이 힘듭니다. ‘집착하는 자신’을 스스로 나무라거나 꾸짖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비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끊어내고 싶은데 끊어낼 수 없게 될 수록 그런 집착하는 마음을 누르고 싫어하는 마음도 더 커지게 됩니다. 이는 내면의 양극화를 일으키고, 자기 내면 갈등의 기초가 됩니다. 마음속은 전쟁터가 되고 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집착하는 마음 자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집착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레이블 링입니다. 거기에 악한 것도 선한 것도 없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이라고 어떤 마음이 이야기된다면 다른 말로는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그만큼 크고 강렬하고 농축되어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집착하는 마음이란 무언인가를 원하는 엄청나게 강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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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마음, 바라는 마음이 나쁜 것일까요?
바라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바라고 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결핍에서 옵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게 됩니다. 몸의 기력이 떨어지면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올라옵니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는 마음은 이렇게 사실은 생존과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붓다 같은 마음이 멋있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욕망은 가지지 말아야 하는 무엇, 없애야 하는 무엇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욕망 자체를 죄악시하고 억누르게 된다면 무엇이 그 욕망을 일으켰는지 그 속을 들여다 볼 기회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픈 이에게 빵을 주면 그 배고픔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배고픔에 음식을 찾는 욕망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됩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그 맛, 감각, 쾌락에 길들여지고 그것을 추구하게 되면 계속 더, 더, 큰 자극을 원하고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쾌락의 추구가 집착하고 같이 작용하면 부어도 부어도 끝이 없고 언제까지나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결핍된 무엇을 알고 그 부분을 채워야 합니다.
특히 애정의 갈구, 따뜻함의 갈구, 보듬음의 갈구, 관심의 갈구 등은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장과정에서 누구나 크건 작건 그런 결핍을 경험합니다. 내가 원했던 그것과 부모가 최선을 다하거나 부족해서 해주었지만 원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어긋납니다. 그래서 결핍이 생깁니다. 그 충족되지 않은 마음은 계속해서 마음속에 남아서 그 결핍을 채우려고 여러 가지 형태로 갈구합니다.
이 갈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갈구 뒤에 있는 상처를 알아차려야합니다.
아 네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이런 것을 바랐는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구나. 그래서 슬펐구나. 화가 났구나. 외로웠구나. 너무 고생을 했구나.
그 마음에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그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시작이 됩니다. 너는 그래서는 안돼가 아니라 아 네가 그래서 그랬구나. 네가 집착하고 싶어서 집착한 게 아니라 그만큼 네가 결핍이 되었구나.
이렇게 그 슬픔, 화, 억울함 등 마음속에 남아있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보듬고 어루만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감정들이 마음속에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마음도 비로소 쉴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은 과거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남은 잔재에 의한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지고 나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내가 과거를 바라보는 풍경은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과거가 바뀌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고 바랐던 일이 현실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불가능한 바람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 내 옆에 24시간 붙어서 나를 계속 챙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나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나 바람은 그 자체가 이루어지는 힘든 바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불가능한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은 무척 고통스럽고 슬픈 일입니다. 부정하고 계속 그런 존재나 방법을 찾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픈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그러면 어떻게 내 안의 결핍을 다른 방식으로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찾아가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내 옆에 24시간 붙어서 나를 돌봐주는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때때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을 만날 수는 있습니다. 나 자신이 괴로울 때 내 안을 채워주는 내가 좋아하고 가슴 뛰는 행위들을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알고 나에게 내가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을까를 점점 익혀가면서 경험해갑니다. 끝이나 정답이나 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 과정 자체가 삶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혼자서 하는 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심리상담사나 전문가의 도움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다른 각도에서 봐 주고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보듬어 줄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계속 찾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