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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Oct 26. 2024

공감의 토대와 공간

마음치유, 무의식 치유, 내면아이 치유

마음 상처 치유의 하나는 공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감을 개념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길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공감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겪거나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나 느낌에 대한 공감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감정, 큰 상처, 큰 감정일 수록 있는 그대로 듣고 공감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죽고 싶다.“라고 한다면 거기에 ”그래, 죽고싶구나.“라고 그 마음 그대로를 있을 수 있도록 받아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내가 공감을 하면 그 사람이 정말 죽어버릴까봐 무서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때는 무서워하고 충격을 받은 내 마음을 먼저 공감하고 들어줄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그래서 언제나 마음 치유는 자기 치유에서 먼저 시작합니다. 내가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폭과 공간이 커지면 그때야 비로소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내 마음이나 감정을 트리거 하지 않게 되는 상태에 가까워져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 마음 공간이 먼저 있습니다. 그것이 순수한 마음이자 중단전입니다. 중단전의 따뜻한 마음이 이야기를 고요히 들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 속에 고여 있던 상처 받은 마음과 감정들이 조금씩 흐를 수 있고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마음 정화이자 영적으로는 천도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도는 굿이나 음식을 차림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중단전의 따뜻함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고 어루만지고 이야기를 듣고 계속 더 깊이 들어가며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천도이든 감정 정화이든 마음 치유이든 상처 치유이든 트라우마 치유이든 여러가지 용어로 불릴 수 있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납니다.

감정이 트리거 되었을때 다만 현재에 집중하거나 내 몸에 집중하거나 호흡에 집중하거나 화 등 감정 이름 자체에 집중하거나 떠오르는 고정관념이나 이야기들은 그냥 스토리나 편견일 뿐이라고 서실이 아니라고 하면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속에 다시 감정을 돌리고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자체에 파도 들어가서 진짜로 그 감정이 트리거되는 그 뿌리의 마음들과 엉켜있는 감정들 자체를 듣고, 그렇게 감정을 충분히 들어서 충분히 몸에서 감정들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이후에 비로소 그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 고정관념과 관련된 정화도 서서히 하는 것이 무의식 마음치유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훨씬 더디고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지만, 깊은 치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의식적으로 나의 무의식과 싸워가며 나를 고치려고 하거나 특정한 행동을 안하려고 하거나 더 좋은 습관을 만들려고 하는 과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해가고 자신 안에 있는 마음들과 친구가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안의 모든 마음들이 서로 의논하고 토론하며 자신을 위한 삶의 선택을 스스로 해갈 수 있는 공간을 넓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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