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가 좋은 나- 입맛의 충족

교수생활

by Professor Sunny

내가 박사과정 졸업이 일 년쯤 남았을 때, 나의 지도교수는 뉴욕으로 이직을 선택했다. 선생님이 어느 날 나를 연구실로 부르시더니, ‘너에게 처음 말하는 뉴스인데, 나는 뉴욕으로 직장을 옮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에 나는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 하나, 또 하나는 이기적 이게도 나의 안위 (또 지도교수가 없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가).


선생님은 늘 나에게 “나는 대도시가 좋아- 나는야 시티 펄슨 (I’m a city person)”을 노래처럼 외치셨는데, 늘 도시로 이직을 소망하셨나 보다. 사실 선생님이 선택한 뉴욕에 있는 그 대학교는 전공분야로만 보자면, 이 작은 도시에 있는 주립대학보다 특별히 더 좋은 조건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이직을 선택하는 걸 보고 ‘우리 선생님은 진짜 도시가 좋은가 보다’ 했었다.


나의 첫 직장은 남부의 작은 타운에 있는 주립대학이었다. 학교 캠퍼스는 너무나도 평화롭고 광활했으며 아름다웠다. 내가 살던 아파트 앞에도 큰 강이 있었는데, 아파트 안에서도 통창으로 리버뷰를 실컷 즐길 수 있었다. 학교 자체의 환경과 일에서 오는 만족감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아 그런데, 나도 2년 만에 대도시로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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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이란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학문분야의 규모가 작은 과들은 학자들이 한 다리 건너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이직을 시도하고 있음이 쉽게 들통나고, 그렇게 들통이 났음에도 이직에 실패해서 그 자리에 그냥 남게 됐을 때 견뎌야 하는 민망함은 스스로의 몫이다.


나는 정말 대도시에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모험을 했다. 이유는 딱 두 가지로 정해졌다. 첫 번째는, 우리 아이가 그때 1살 반쯤 되었는데, 한국인이 많은 곳에서 어울려 키우고 싶다는 것과, 두 번째는 ‘한국 식당’이 있는 곳에서 살면서 외식하고 싶다는 것. 모두 나의 개인적 편의성을 위한 이유였다.


다시 교수 면접 인터뷰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제는 학생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경력직 이직에 걸맞은 경력- 논문의 질과 양, 강의 평가- 이 필요하다. 이 경력을 만들기 위해 2년 동안 맹렬하게 논문을 써왔다. 서류를 꾸려서 내보낸다- 기다린다- 전화 인터뷰를 한다- 또 기다린다- 캠퍼스 인터뷰를 간다. 과정은 늘 한결같다. 이번 이직 때도 한 번의 대실패 후 두 번째 인터뷰에서 운때가 맞았다.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우리 세 식구는 대도시로 이사를 왔다.


내가 꼽는 미국의 대도시에서 살며 일하는 메리트라 함은 너무 간단하게 ‘음식’에 있다. 한국음식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늘 먹던 음식을 못 먹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를 그 2년간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대단한 대식가도 아니고 미식가도 아닌데, 먹는 것에 과하다시피 집착하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나가서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매 번의 외식에서 지속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내가 이직 후 얼마 되지 않아 지도교수님과 전화를 할 일이 생겼다. “뉴욕 생활은 어때요?” 하고 묻자, 베지테리안이신 나의 선생님은 “음. 뉴욕은 너무 좋아. 베지테리안 음식을 아무데서나 사 먹을 수 있어”라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와! 소름! 이 풍족한 시대에는 흔히 떠올릴 수 없는 인간의 기본 욕구 ‘의식주’가, 정말 인간을 위한 기본적 욕구가 맞는구나, 인간의 본능을 만족시켜주는구나를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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