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al Identity- 정체성
시카고 라이프
by Professor Sunny Sep 27. 2021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나의 모든 면을 다 볼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스스로 나의 안 좋은 부분은 감추고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 타인 A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타인 B는 나를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은 타인 A와 B 가 전혀 다르게 성장해 온 다른 사람으로서 인식 세계가 다른 탓 일수도 있고, 혹은 내가 그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른 태도로 다가갔을 수도 있겠다.
살면서 나는 몇몇의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어 왔고, 또 어떤 몇몇에게는 못된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끔은 ‘ 내가 그 사람에게 왜 그랬을까’ 하는 상념에 빠지기도 하는데, 나조차 내가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논문을 쓰면, American Phycological Association (APA)에서 가이드 해준대로 논문을 포맷(formatting)을 해야 하고, 그 가이드라인 안에서 언어를 조심스럽게 채택해서 사용해야 한다. 가장 최근 버전인 APA 7차에서는 저자가 논문 참여자의 성(sexuality)을 she 혹은 he, (여성 혹은 남성)으로 임의로 정하여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논문 실험의 참여자에 대해 (그 참여자가 단 한 명이더라도) 3인칭 복수 대명사인 ‘they’를 쓰도록 권고했다.
이것은 논문을 쓸 때 만이 아니라 내가 수업을 할 때도 적용된다. 작년에 이 가이드가 처음으로 발효되고 수업을 시작할 때, ‘그 남자아이가 이런 행동문제를 보이면…’이라고 특정 성을 지칭하는 언어를 버릇처럼 사용했다가, 한 학생으로부터, ‘교수님, 이제부터는 they로 쓰심을 권유해드립니다’라고 지적을 당했었다. 입에 버릇처럼 붙어온 언어를 한순간에 고친다는 것이 꽤 힘들 줄 알았는데, 나의 버릇이 그 학생에게 굉장한 불쾌감을 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경각심이 들면서 한순간에 싹 고쳐졌다. 이것은 분명 문화의 변화가 눈으로 보이는 일례이다.
이렇게 문화가 점차 발전하고 수정됨에 따라 우리도 이런 변화에 같이 적응해야 하고, 계속해서 달라지는 사회가 생각하는, 예를 들어, ‘성 정체’의 정의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그러면서 그 사회에 속한 문화인이 되간다. 이렇게 한 분야에서 변화하는 문화 요인에 대해 문서화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잘 정리된 그 통째로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서화하지 않는, 혹은 될 수 없는 문화의 변화들이 시간에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문화적 정체성 (cultural identity)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굳이 뉘앙스를 고려해 번역하자면 한국어로는 그냥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유명한 사회학자들은 (Erickson) 한 개인의 문화 정체성이 각 개인의 가족 문화, 교육 수준, 나이, 살아온 경험치, 종교, 재정 상태, 앞서 말한 사회적 성 정체성, 개인이 가진 성 정체성 등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융합되어 형성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문화 정체성이 세상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눈이 되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감추기도 하고, 타인과 교류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문화적 도구(tool)가 되어준다.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이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 내리기 힘들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세상의 문화가 바뀜에 따라 나도 변하고, 경험치가 쌓임에 따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문화의 정체성으로 살고 있다. 그런 연장선 상에서 보자면 어제는 맞던 게, 오늘은 틀릴 수 있겠다.
사실 ‘문화적 정체성’까지 들먹이며 변명을 줄줄 늘어놓는 이유는, 나도 모르는 새에 특정인에게 특히 뾰족하게 굴었던 게 늘 마음에 걸려 왔던 기억이 있어서다. 그 사람은 내가 제일 정신없던 박사 학생 시절의 친구였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항상 부정적인 태도의 내가 등장했다. 속으로도 ‘아 이건 내가 아닌데’라고 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일관했다. 아마 그때의 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똘똘 뭉쳐진 문화적 정체성을 장착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 사람이 너무 편했던지 나 같지 않던 그런 모습이 감출 새도 없이 발현했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아요’ 아니면 ‘나는 원래 그렇지 않아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그 타인에게 나는 이미지를 쇄신해 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멀어졌다. 사실 잊어버리면 그만인 인연인데, 전혀 내가 아닌 나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불현듯 내가 생각날 때마다 불쾌할 그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남편의 1차원적 스토리 이해의 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