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또 끄집어내기

어린 시절 이야기

by Professor Sunny

지난 3주간은 지독하게 바쁜 시간이었다. 어제 냉장고를 보니 한심했다. 아이가 먹는 고기와 과일을 빼고는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었다.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는 바로 한인마트로 출동해서 자그마치 300불 치의 장을 봤다. 계산해주시던 직원분이 “2주치예요 3주치예요?!”라고 물었다. 냉장고가 그득그득 채워지는 그 느낌이,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것 같았다. 그 냉장고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3주 만에 허기가 몰려왔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가만 보면 나는 뭔가를 할 때 꼭 극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멀티테스킹이 전혀 안되는 나라는 사람은 일이 많아지고 마음이 급해지면 밥도 잠도 뒷전이 된다. 그러다가 여유가 좀 생기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허기가 몰려오면서 허겁지겁 음식을 찾는다. 지금 생각해도 이것은 참 안 좋은 습관이다.


(세상에.. 추억의 도시락 컵라면... 어제 한인마트에서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다!!)

이런 습관은 아마도 어릴 때부터의 생활습관이나 가지고 있던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을 거 같다. 아니면 나의 성장 시절인 1980년대가 주었던 그 특유의 시대적 영향이랄까. 나는 지금의 일산이 개발되기 전부터, 그 시골 동네에 살았는데, 학교에 가려면 1시간에 한 번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고 15-20분여 정도를 달려, 학교에 가야 했다. 7시 10분 버스를 놓치면 나는 학교에 갈 수가 없다. 국민학교 1학년인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7시부터 나가서 정류장에 서 있어야 했다. 그렇게 일찍 학교에 가면 나와, 그리고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 한 명, 우리 둘만 덩그러니 도착해서 칠판에 낙서하며 시간을 때우고 놀았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다. 그 휑한 시골에서 나는 단지 시간에 맞춰서 학교에 가고, 하교 후 버스를 제시간에 기다렸다가 타서 집으로 안전 귀가하는 데에 온 신경을 쏟았다.


지난주에 아들이 독감 주사를 맞았다. 그러면서 내가 어릴 때 예방 주사를 맞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의사와 간호사가 학교로 와서, 모든 아이들이 옷소매 한쪽을 올리고 한 줄로 서서 일제히 주사를 맞았었다. '누가 누가 더 안 떨고 주사를 잘 맞나'가 자존심 대결이 되기도 했다. 2학년쯤으로 기억이 나는데, 그날은 장티푸스 주사를 맞는 날이었다. 주사를 맞고 나와 친구는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같이 내렸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우리 둘만 담임 선생님과 함께 창밖을 보며 교실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선생님도 이내 퇴근했어야 했는지, 어디서 큰 쓰레기 봉지와 신문지를 가져오시더니 팔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우리 몸을 칭칭 감아 주셨다. 그 패션을 하고 큰맘 먹고 밖으로 나왔는데, 우산이 없는 채로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그 10-15분 사이 당연히 우리는 비를 왕창 맞았다. 그래도 어린 우리는 재미있었다. 무릎까지 비가 철벅철벅 차는데도, 재미있다고 버스 정류장까지 까르르 웃으며 걸었다. 그런데, 장티푸스 주사를 맞은 팔에는 절대 물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거였는지(?), 아니면 젖은 신문지에서 스며든 잉크 때문이었는지, 그다음 날부터 며칠간 감염으로 인해 나는- 팔과 온몸이-심하게 아팠다.


또 그즈음에는 일산 지역에 말도 못 하게 큰 홍수가 났었다. 집이 형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잠겼다. 학교와, 집이 복구되는 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다. 물이 다 빠지고 나서 아빠와 다시 집터를 둘러보는데, 어린 마음에도 이것은 흡사 전쟁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은 보이지 않고 사방이 쓰레기와 진흙더미였다. 나름 그래도 구조활동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고, 나라에서 구조 물품도 많이 주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지원물품 중 하나는 내 이불이었는데, 나는 ‘노태우 대통령 증정’이라고 포장지에 적혀있던 그 하늘색 이불에 처음으로 나만을 위한 이불이라는 이상한 의미를 부여하고서 애착을 가지고 고등학교 때까지도 덮고 잤다.


이런 경험들이 어린 시절에 숱하게 많았다. 그 시절이 그냥 그렇게 낙후되어 있던 건지, 아니면 그 시절에 아직 아이들의 ‘안전’과 ‘정서’를 챙겨야 한다는 개념이 성립되어있지 않았던 것인지, 나는 그 이런 상황들에 생으로 던져져서, 이겨내고, 즐기고 하는 방법들을 스스로 배웠다. 서울에서 꽤 부유하게 자랐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상황에 큰 차이는 없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이 세대에 빈번하게 일어났던 이런 유형의 일들이 내 또래였던 어린아이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궁금하다.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렸던 내가 어떻게 이런 좋지 않은 상황들을 마음의 상처 없이 받아들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린 나는 그런 일을 겪으며 어떤 생각과 판단을 했을까? 지금은 거의 다 까먹은 감정과 추억이지만, 그때의 경험들은 분명히 지금을 살고 있는 나의 태도와 자세를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수해 복구 중이던 어느 날, 어린 동생을 다른 곳에서 돌보느라 며칠 떨어져 있던 엄마를 할머니 댁에서 만났는데, 어릴 때부터도 잘 울지 않고 씩씩했던 내가 엄마를 보고 눈물을 찔끔 흘렸던 기억이 있다. 6.25 전쟁통 같은 시기는 아니었지만, 또 우리 부모세대는 우리들에게 참 좋은 시절에 태어났다고 했지만, 돌아보면 1980년 대생들도 자라던 환경이 꽤나 쾌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직도 긴장감을 가지고 주어진 책임감을 꼭 완수하고 싶다는 절박한 태도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은연중에 깔려있다. 실수가 두려운 것도 아닌데, 보고 배우며 익힌 습관은 잘 안 고쳐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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