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소통할 때 나는 그 사람이 ‘누구와 비슷하다’ ‘누구와 닮았네’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는 첫인상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사람의 성격과 그 사람이 주는 느낌으로 다른 누군가와 연관이 지어질 때가 많다. 이런 매칭은 보통은 ‘연예인 누구와 비슷한 느낌이 있다’로 짝지어지곤 하는데, 나는 최근 꽤 많이 ‘언니는 진짜 우리 엄마랑 닮았어’로 연예인이 아닌, 누군가의 ‘엄마’ 느낌의 매칭이 지어졌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엄마 느낌이 어떤 건지를 꼼꼼히 물어, 내가 풍기고 있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파악해본다. 내가 현재 뿜어내고 있는 이미지는 ‘바쁜 워킹맘’ 쯤으로 결론 지어진다.
맞긴 맞다. 요새는 특히 더 정신이 없다- 코비드로 인해 대부분의 일이 재택에 의존하게 되면서, 육아, 집안일, 그리고 나의 주업의 경계가 없어졌다. 워낙에 시간 사용이 자율적인 직업이었던 데다가, 이제는 코비드로 인해 한층 더 시간과 역할에 경계가 없는 삶을 매니징하고 있자니, 없던 화병이 생겨 폭발할 거 같았던 시간들이 꽤 있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정신없이 이 말했다 저 말했다가 생각나는 대로 떠들다가, 갑자기 멍 때리기도 했다가 하는 등, 나는 아직 코비드 시대를 발맞춰 가지 못하고 부적응 중인가 보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만난 이 친구도 언젠가 나에게 ‘언니는 우리 엄마랑 진짜 닮았어’라고 말했었는데, 친구의 어머니께서도 평생을 워킹맘으로 지내셨다고 하셨다. 이 친구의 아이와 나의 아이는 같은 나이라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종종 같이 어울려 논다. 나는 이 친구의 이미지를 ‘본인의 자리에서 심지 곧게, 은근한 빛을 발현하는 사람’으로 나름 멋있게 정의했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변한 점 하나는, 티비를 보거나 할 때 멋진 남자 연예인이 나오면 전에는 ‘멋있다’라고 생각한다거나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제는 ‘아 잘 컸다, 우리 아들이 저렇게 컸으면 좋겠다’ 하고 자꾸 아들들(?)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 사람과 가깝게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저런 면들이 보이기 마련인데, 이 친구와 가까이 지내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중 하나는- 내가 그녀의 엄마와 닮았다니 더 드는 생각이겠지만- ‘잘 컸다’이다. 친구에게 ‘너 잘 컸다’라고 생각하는 게 웃기지만, 친구가 해주는 본인 엄마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 바빴던 워킹맘에게서 이렇게 잘 자라 온 친구가 기특하고, ‘바쁜 엄마인 내가 키운 내 아이도 잘 클 수 있을 거야’하는 희망을 본다.
나는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가정주부가 되기로 한 이 친구에게 몇 번이고 ‘엄마로 사는 건 어때’ 하고 물었었다. 그만큼 이 친구가 차분하게 육아를 해왔고, 그래서 나로서는 이 친구에게 ‘엄마로 사는 건 좋아’라는 말을 들음으로 ‘육아를 즐겁게 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육아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라는 확신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가 보여주는 긍정적인 육아인으로서의 자세는, 같은 육아인임에도 머릿속이 뒤죽박죽 해서 육아를 제대로 하고 있나 싶은 나에게,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이 큰 가치가 있는 일임을 계속해서 확인시켜주는 에너지가 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주변에 자기 자리에서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주업인 나에게 자신이 가진 긍정적인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친구들은, 내가 관찰하고 내 삶 속으로 모방학습을 하는 데 좋은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