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신분을 벗어난,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은 성인은 어느덧 타인으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듣기 쉽지 않다. 학생 때나 어릴 때는 부모로부터 ‘잘한다, 너는 참 예쁘다, 소중하다’라는 식의 긍정적인 평가 또는 치어링(cheering)을 위한 응원을 많이 받는다. 어느 순간 내가 어른이 되어서 치어링을 해줘야 하는 자리에 서면, 그런 응원의 말이나, 혹은 ‘너 잘한다, 예쁘다’ 하는 식의 긍정적 평가를 받는 입장에 자주 설 수 없다.
그 나이 즈음이 되면, 우선 외모적으로 예쁠 수 있는 시기도 지났다. 사회인으로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이미 그 자리의 전문가로 인정됨과 동시에, 그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자리에 대한 무게감을 더한다. 오히려 성인이 된 후로는, 혹시나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질책들이 눈에 보이게 많아진다. 이 부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상황들이 몇 년째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도 자존감이 떨어지기 마련일 것이다.
나는 이번 학기에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발달지연을 어떻게 캐치하고, 장애를 진단하는지’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요새 나온 꽤 많은 진단 도구들은, 심리 사회적 위험요소(Psychosocial risk factors)들이 아이들의 발달지연/장애를 만들 수 있고, 학교 내 학습에 큰 영향을 준다고 인정하고 시작을 한다. 그래서 장애 진단을 하기 전에 우선 한 아이가 이런 위험 요소들에 노출되어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진단도구들에 나열되어 있는 위험 요소들을 예시를 들여다보면 -같이 사는 부모의 역할과 태도- 예를 들면 부모의 정서가 정상 발달해 온 사람들인지, 부모가 아이의 발달과 교육에 관심이 있는지, 너무 많은 형제자매가 한집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너무 가난하지는 않은지 등등이다.
나를 구성해주는 주변 사람의 양과 질이, 어릴 때부터도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게 될 때,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그 사람의 좋은 면이 나에게 긍정적인 느낌과 안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닮아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의 배우자 한 사람이 삶을 사는 동안 지속적으로 나에게 보여주는 심리 사회적 태도가 나의 삶을 서서히 뿌리째 흔들어 갈 수도 있다.
내 어릴 때 기억에 있는 우리 외할머니는 참 고우셨다. 어느 날 할머니는 누군가가 “할머니 참 고우세요”라고 했던 말에 방긋 웃으셨다. ‘곱다는 말이 뭐가 그렇게 좋을까?’ 나는 그 나이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아직 나는 할머니도 아닌데- 그 곱다는 말을 들은 할머니가 부럽다. 이것은 외모적인 평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긍정적인 말을 들은 할머니의 찰나의 시간이 너무 찰나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주변 사람이 꼭 이런 긍정적인 이야기를 꼭 짚어서 이야기해주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무한한 긍정적 에너지를 보내주면, 안정감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부터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고자 하는 의지도 어찌 보면 다시 돌아, 내가 정서적, 생태적(Ecological),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해 가기 위한 개인의 의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 남편.. 그림.. 하.... 수많은 질책을 쏟아내고 싶지만.. ㅋㅋ 속으로 삭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