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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맘 끌레어 Nov 23. 2021

피할 수 없는 경쟁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나가는 법

영국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

수술 후부터 나를 쭉 봐온 도수치료 선생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

“항암치료를 이렇게까지 잘 이겨낼 줄 몰랐어요. 제가 봐 온 환자들 중에 탑이에요.

오늘도 자신에게 칭찬 많이 해 주세요.”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 환자들도 매일 운동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제야 스스로 쓰담쓰담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우리 세 식구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각자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 아닐까?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는데 엘라의 영국 크리스마스 공연이 생각났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으로 공연 파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차가운 온도의 영국인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질문하면 안 하거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는 엘라, 그날 저녁은 술이 그렇게 고팠다. 제일 작은 엘라를 무대 구석자리에 세워 얼굴이 안 보이는 것도 속상했다. (ABC도 모른 채 영국 갔는데 1년 차에 가사 외우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거지. 모든 게 처음이었고 시간이 필요한 거였잖아)


지나고 나서 동영상을 열어보니 엄마가 보지 못했던 순간을 주변 사람들이 뒤에서 칭찬해주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엘라에게 다가와서 “네가 오늘 슈퍼스타야.”라고 말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암환자가 되고 나니 재발에 자유롭지 못한 몸이 되었다. 자연스레 죽음의 문턱까지 생각하는 되고, 그 순간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건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이라 추측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남아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질문, "충분히 사랑하며 살았는가?" 더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99일 잘한 기억보다 1일 못한 기억이 그렇게 후회될 줄 몰랐다.

사랑하는 사람 그 자체로 만족하기보다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더 익숙했다. "엘라야, ㅇㅇ는 큰 소리로 자신감 있게 노래를 해서 무대 중앙에 서게 된 거야. 틀려도 괜찮으니까 자신감 있게 해 볼까?" 공연이 끝나고도 "엘라야, 잘했어. 다음번에는…." 이렇게 부탁하기보다 "정말 잘했고 멋진 공연이었어."로 끝났어야 했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아이를 친구와의 비교라는 칼로 난도질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티를 안 낸다고 했지만 그 마음이 전해졌을 것 같아 카페에서 울컥했다. "엘라야, 너의 크리스마스 공연 기억은 어떠니?"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느꼈다. 이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공기, 음식, 스트레스.

피할 수 없는 경쟁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남는 법은 가족끼리는 적어도 쓰담쓰담 칭찬해줘야 한다. 소중한 가족들이 아침에 현관문을 나갔다가 저녁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전쟁터에서 싸우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어주는 엄마, 아내이고 싶다.


재발은 1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 유한한 존재인 것은 생각하며 살고 싶다. 그래서 남은 생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예정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 식구 밥 한 끼 먹는 시간이 전과는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귀한 시간 '1분도' 허투루 쓰지 않고 격려해주며 칭찬만 해 줘야지. 자기 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꼭 셋이서 쓰담쓰담하며 안아줘야지.


가족들에게 쓰담쓰담, 나에게 쓰담쓰담.

99개의 단점보다 1개의 장점을 크게 칭찬해줘야 한다는 것을 암에 걸리고서야 알았다니.

인생 전반부는 헛살았지만 후반부는 현명해지는 걸로!

당연하지 않은 가족, 옆에 있어줘서 오늘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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