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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맘 끌레어 Oct 05. 2022

함부로  ‘나라면 못 살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지 말기

암 환자가 되고 나서 언제 제일 많이 울었어?

  

암 환자가 되고 나서 언제 제일 많이 울었어?


라고 묻는다면, ‘항암치료를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다. ‘항암만은 피해가게 해 주세요.’라고 절실하게 기도 했는데, 수술 후 암 타입이 바뀌었고, 항암 당첨.



유방암이란 유방에 생긴 암세포로 이루어진 종괴다. 유방암은 호르몬 수용체와 HER2, Ki-67(세포 안 단백질) 발현 정도에 따라 ‘호르몬 양성 유방암’, ‘HER2 양성 유방암’, 그리고 호르몬과 HER2 모두 갖고 있지 않은 ‘삼중 음성 유방암’으로 나눌 수 있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 HER2 양성 유방암, 삼중 음성 유방암 중 호르몬 양성 유방암이 가장 순한 암이며 예후가 좋고 천천히 자라난다. 반대로 HER2 양성 유방암과 삼중 음성 유방암은 상당히 독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암이 빠르게 자라난다. 따라서 항암치료를 하면 암이 잘 줄어든다.

출처: 이석훈 기자 “여성암 1위 '유방암', 종류와 치료법은?” 팜뉴스. 2022년 5월 4일  http://www.pharmnews.com/news/articleViewAmp.html?idxno=203740


유방암의 분류(유방암의 경우 암의 기수보다 암의 종류가 치료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항암치료


수술 전에는 호르몬 양성 유방암으로 Ki-67 지수가 4% 온코 검사를 통해 항암을 패스할  있을 거라는 긍정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수술  허투(HER2) 양성으로 바뀌는 바람에 호르몬 양성 유방암 그리고 허투 양성 유방암이 합쳐져 '삼중 양성 유방암' 환자가 되어버렸다.

삼중 음성 유방암과 허투 양성 유방암은 3-5년 이내 재발되는 경우가 많고 그 이후에는 비교적 재발이 적은 편이다. 그러므로 초기에 더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에 반해 호르몬 양성 유방암은 5년 이내 재발은 적지만 5-10년 이후 재발한 케이스가 많다. (나는 둘 다 해당하는 경우다)

첫번째 항암 주사를 맞고 민머리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찍었던 가족사진(굿바이, 단발머리)


항암만은 왜 피하고 싶었냐고요?

이유 중 하나는 탈모였다. '내가 대머리라면? 못 살 것 같아. 상상도 하기 싫어.’라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잠깐만 치료에 집중하면 머리카락이야 금방 자라잖아’라고 위로해주는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 기간 동안은 어떻게 살죠? 그래요, 잘 버티어서 잘 끝났다고 칩시다. 그렇게 암 치료가 끝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예전 머리카락이 아니라고, 머리숱이 적어지고 얇아졌다고 얘기하던걸요. 5-60대가 넘어가면 뭐니 뭐니 해도 머리빨인 것 아시죠? 앞머리 숱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나이 앞자리가 달라 보이던데, 이번 생은 망했어요.”

좌: 항암낮병동, 우: 암병원(2021년 하반기 대부분의 시간을 암병원에서 보냈다.)


본 병원 암병동에서는 암환자들이 모자를 쓰고 있고, 병실에서도 커튼을 치고 있기에 민머리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요양병원 병실에서 내가 처음 본 풍경은 환자복을 입은 대머리 언니들이었다. 심지어


골룸처럼 몇 가닥 남은 머리

  

그게 나의 먼 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심히 절망적이었다.


여기서 잠깐, ‘골룸 머리’를 이해해보자면.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대개 14일 이후부터 머리카락이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한다. 그때 쉐이빙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면 나중에 몇 가닥만 남는 골룸이 되어버린다. ‘골룸처럼 보이는데 왜 쉐이빙을 안 할까?’ 궁금했다. 이유는 쉐이빙 하는 타이밍을 놓칠 경우, 털끝만 건드려도 아픈 항암 주기가 찾아온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골룸이 되었다는 후문.


수술 전, 몸만들기 루틴에 돌입한 나는 수술 후에도 여전하다. 요양병원에 입원 후 둘째 날, 아침 먹고 운동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하면서 같은 방 언니들에게 ‘밖에서 필요한 것 있을까요? 제가 오면서 사 올게요.’라고 했더니, ‘언니가 알다시피 민머리라서 외출하려면 가발도 써야 하고 시간이 좀 걸리네? 오면서 식염수 좀 사다 줄 수 있을까?’라고 부탁한다. ‘당연하죠.’라고 웃으며 말하는데 속으로는 마음이 찡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나랑은 상관없는 유방암 환우로 가득 찬 병원 이야기. 여기까지 읽으면서 ‘나라면 못 살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으니까. 암환자가 되고 나서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였다.

주변에 암환자가 없어서 그런가 세상에서 나만 동떨어진 느낌, 이질감이었다. 라운드어바웃(회전 교차로)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나만 뱅글뱅글 돌고 있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혀있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출구를 찾아야만 했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 빠져나온 작가들의 책만 골라서 읽었다. 그런 책 여러 권에 소개되어 읽기 시작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책, 목사라는 친아빠에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10년 동안 성폭행당한 딸의 일기다.

‘첫 장에서 그랬다. '저런 일 당하면 살기 힘들겠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친아빠라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한) 나는 어쩌라는 말인지 마음이 힘들어진다고. 그러면서 저자는 부탁했다. 내가 저 입장이라면 함부로 ‘못 살 것 같다'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 달라고.

나도 암환자가 되리라고는 1도 생각 못했다. 절망적인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긍정적 마인드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살면서 심한 교통사고 같은 사건이 나에게 혹은 딸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결국 다 살아진다는 것을.


  어떤 것에 짓밟힌 들풀조차
다시 되살아나는 것만큼
우리의 생명력도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예전의 나라면 '슬프고 절망적인 사건은 피해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도제목도, 가치관도 바뀌었다.


(설령) 어려운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딸을 단단하게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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