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10월에 교통사고가 났고 3개월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지내다 30살 2월에 소개팅을 했다. 외모가 내 스타일은 아니더라도 교통사고 교훈으로 두 번은 만나보자 처음 결심했는데 그 사람이 지금 남편이 되었다는 후문.
내 인생도 책임지기 어려운데 무슨 임신이냐며 3-4년을 미뤘다. 뒤늦게 자궁근종이 생겼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숙제를 시작했다. 마음먹고 시작한 임신이라는 숙제는 잘 안 되었고, 차병원을 찾았다. “근종이 착상 자리에 있어서 임신이 안 된 거예요. 자연임신은 포기하는 게 좋을 거예요. 수술로 근종을 떼어낸 후 인공수정 혹은 시험관을 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6주 후 수술하고 다시 뵙는 걸로 하죠.”
며칠 후, 오전에 배란테스트기를 하는데 빨간 선이 보인다. ‘오늘 신랑 회식이 있다고 했는데, 수술 전 마지막 숙제는 해보고 싶고 어떡하지…?’ 고민하다 내가 신랑 회식 장소로 픽업, 숙제를 잘 마쳤다. 그리고 얼마 후 생리가 없어 혹시? 했는데, ‘임신 성공!’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했지만 진정한 내려놓기가 안 되었나 보다. ‘당신 자연임신 못해요!’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진정한 포기가 되었고, 그제야…
우리는 태명을 ‘희망’이라고 지었고, 그 아이가 지금 엘라다.
착상 자리에 있었던 근종을
비집고 들어앉아 엄마를 수술에서 구해 준
희망이.
엘라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신랑은 태명이 좋다며 한동안 ‘희망이’라고 불렀다. 서서히 우리 부부의 기억 속에 희망이는 잊혔지만, 그렇게 부르며 찍어 놓은 동영상을 엘라가 즐겨보았다.
초예민녀라 힘들었고, 독박 육아라 더 힘들었다. 엘라가 태어나기 전부터 주재원 발령이 예정되어 있어 둘째는 더 생각 못했다. 교통사고 때 죽을 뻔했던 경험 때문인지 둘째 키우며 독박 육아를 런던에서 하느니 엘라와 여행 다니며 좋은 추억을 남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알차게 계획했고, 신나게 여행했다.
그러다 코로나19… 락다운… 한국으로 컴백… 초등 1학년 입학…. 이제 좀 살만해져서 미뤘던 건강검진을 했는데 ‘암환자’…그리고 항암 부작용으로 ‘빠. 박. 이’…
어렸을 때 머리카락이 더디게 자란 엘라는 대머리가 콤플렉스였고, 자기가 친구를 사귀는 기준은 머리가 긴 여자애였다. 엄마가 단발로 커트하러 가는 것도 싫어하는, 프린세스 스토리 광팬녀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암 치료를 결심했지만 속으로 충격받을 그녀가 걱정이었다.
평생 오지 말았으면 하는 날이 찾아왔고 그녀를 만났다. 어린 나이에 빠박이 엄마를 마주해야 하는 것도 속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심한 말도 쿨하게 넘길 강심장으로 그녀를 만나자 다짐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가발을 조심스레 벗는데…
희망이랑 똑같이 생겼어.
희망이가 우리 집에 '다시' 왔네.”
(엘라 태명이 희망이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나를 그렇게 불러주다니.)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하이톤의 목소리로 격하게 환영해준다. 빠박이 엄마를 처음 본 8살 딸의 반응은 암 진단 이후 내가 받은 가장 큰 위로였다.
임신과 암환자 말로는 내려놓는다고 하면서 실은 아니었나 보다. 받아들였다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빠박이가 되고서야 받아들여졌다.
여백의 순간이 되어야만 찾아오는 희망.
끝이라고 생각하며 한 숨 쉬었는데, 들숨으로 새로운 공기 희망을 넣어주는 딸.
엘라야, 네가 우리에게 와 줘서 희망이 왔는데, 이번에도 너의 예쁜 말과 생각 덕분에
희망이 마중 오고 있는 것 같아.”
인생은 절망 속에서 살아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희망을 찾고 품으면, 이 시간 또한 깨달음이 있는 시간으로 바뀌리라. 그러기에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
깨달음을 주는 우리 딸, 네가 엄마를 살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