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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Oct 13. 2021

[가상 인터뷰] 고길동, 우리 아빠의 찬란한 이름_2.

이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 진정한 츤데레, 살아있는 성자를 만나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저도 제 인생이 있지 않겠습니까?




네, 생각만해도 스트레스가 장난 아닐 것 같아요. 가장으로 부인과 어린 아들, 딸, 그리고 조카까지 부양해야 하고 여기에 공룡, 외계인, 타조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데, 다들 먹는게 대식가들이라 앵겔지수가 제법 높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아파트 층간 소음은 아니더라도 소음 유발자인 가수지망생 이웃 마이콜까지…그 많은 스트레스를 다 어떻게 푸나요?


어찌나 많이 먹어들 대는지…암튼, 그래서 각종 성인병과 위장병에 살이 많이 빠졌죠. 그러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번뿐인 인생인데 저도 제 인생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러가지 취미 활동을 시작했어요. 




어떤 취미들이 있으세요?


뭐 남들이 취미부자라 하기하는데… 바둑, LP판 수집, 음악감상, 사진, 양주 수집, 서예, 낚시, 화초 가꾸기, 테니스 등 이것 저것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저도 그 못된 둘리 일당 놈들이 다 망가트려 놓고 있어요. 


레어템 희귀 LP판을 망가트려 놓거나, 해외여행에서 돌아올 때 큰맘 먹고 면세점에서 사온 양주들을 모조리 깨먹지 않나. 고급 낚싯대를 부러트렸놓지 않나. 출사 때만 쓰는 아주 아끼는 DSLR 카메라들도 수도 없이 부셔졌어요.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 지려 했는데 더 스트레스 쌓일 때가 많아요.


마이 프레셔스~~~그의 영혼과 같은...깨진 LP판을 보니 마음이 무너집니다...대인배예요...길동씨




역설적이게도 그들에게는 LP가 낡고 오래된 물건이 아니거든요... 
새롭고 쿨 하고 힙한 어떤 즐길거리 



네 저도 기억합니다, 원작에서 둘리 일당이 당신이 애지중지한 LP를 다 망가트리죠. 그런데 그게 수집하시는 고가의 LP판인 줄은 몰랐네요. 그러고 보니 요즘 다시 레트로 열풍이 대단한데요…LP는 과거의 낡은 골동품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최근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관심이 아주 높고 수요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맞아요, 역설적이게도 그들에게는 LP가 낡고 오래된 물건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는 건 4050대 세대죠. MZ세대에게 LP는 새롭고 쿨 하고 힙한 어떤 즐길거리예요. 


얼마전 을지로에 있는 <평균율>이라는 LP바 겸 카페에 와이프와  간 적이 있어요. 카페 밖은 평범한 을지로의 낡은 도심 골목인데 올라가보니 젊은이들이 아주 많더군요. 커피를 주문하고 음악을 들으며 손을 꼭 잡고 데이트하는 커플, 모임인 듯 재잘거리며 칵테일을 마시는 젊은 여성들, 수동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남학생,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고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올리는 여학생 등 끼리 끼리 저마다 앉아 있었죠. 


저희 부부도 구석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주문하는데 두대의 턴테이블에서 처음에 재즈가 흘러나오다가 직원인지 디제이인지 하는 친구가 LP 판을 교체하고 턴테이블에 위에 놓고 바늘을 내려 놓더라구요. 영국 밴드 혼네의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디제이 부스 앞에 20대 초반의 커플이 앉아서 마치 처음보는 신기한 불을 쳐다보듯 눈을 떼지 못하고 한동안 쳐다보는거예요. 그리고 막 자기들끼리 눈은 마주보고 ‘와~’ ‘와~신기해’ 이러더군요. 오히려 저는 그 커플이 더 신기했어요. 이게 뭐라고 신기해 하나 생각했죠. 


을지로의 낡고 오래된 골목들 사이로...이런 힙한 LP바가 가득합니다.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에서도 이야기 하듯 LP는 기존 기성세대에게는 낡은 과거의 유물이지만 MZ에게는 음악을 즐기는 새로운 미디어인거죠. 이들은 음악이란 디지털 음원으로 무형의 것이 었던 게, 마치 도서관의 책처럼 음악을 소유할 수 있고 음악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태어나서 처음으로요…



고길동씨 그는 취미에 진심입니다. 얼마전 이베이에서 정말 원하는 레어템을 구했다고 펄쩍 펄쩍 기뻐합니다.



옛날처럼, 몸으로 느끼는 음악 그게 바로 LP 를 좋아하는 이유예요






그렇다면 고길동 당신이 LP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 <포트레이트 인 재즈>에서 그가 LP를 듣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해요.


‘CD말고, 옛날처럼 몸을 사용하여 LP로 듣는 것을 좋아한다….난 여자 친구보다 더 소중하게, 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못지않게 레코드를 소중하게 다뤘다. … 요즘 사람들은 CD에 담긴 음악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플라스틱 케이스를 껴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미발표곡까지 담겨 있는 CD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푸근한 소리에 LP를 선택하고 만다.’



하루키의 책을 읽다보면...LP판 재즈를 들으며 와인한잔 마시고 싶어요...폼나게 소파에 기대서 말이죠...언능 돈 법시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옛날처럼, 몸으로 느끼는 음악 그게 바로 LP 를 좋아하는 이유예요.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려면, 우선 주욱~ 레코드 판을 훑어 찾아야하죠. 해당 앨범을 찾아 자켓을 열고 플라스틱 LP를 손으로 직접 꺼내고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원하는 곡의 트랙을 확인하고 바늘을 그 위에 내려 놓아야 해요.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야 내가 원하는 곡이 나오죠.


번거롭고 비어지는 시간, 시간을 흘려 보내는 작업예요. 그러나 디지털 음원에서는 결코 줄 수 없는 몸으로 느끼는 감성이 여기에 있죠. 편의성과 즉시성을 주는 디지털 시대라지만, 아날로그만이 줄 수 있는 따스한 감성이랄까요. 인스턴트 커피를 먹을 수도 있지만 원두를 구매하고 로스팅을 하고 핸드 그라인드을 사용하고, 필터에 물을 내려 마시는 커피의 향과 같은 것이죠. (홋…LP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길동 씨의 눈빛이 자못 진지합니다 )


원하는 음악을 듣기 위한 번거로운 과정...그 안에 감성이 쌓여만 갑니다.




개인적으로 좋아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지만, 사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가장으로 자신의 취미를 유지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잖아요? 그럼에도 꼭 취미를 가져야 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을까요?


가장으로서의 나도 있지만 <남자의 물건>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게 내 철학예요.. 과거 김정운 교수의 책을 읽었는데 그때 깨달았죠. 누가 제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잖아요. 가정도 소중하지만, 제 삶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느꼈죠. 흔히 제 또래 남성들에게 너 취미가 뭐냐? 물으면 십중팔구 대답을 못해요. 그만큼 일만 보고 달려가는 거죠. 그러다가 더 나이 먹으면, 와이프는 곰탕 끓여놓고 떠나고, 아이들 지들 애인 찾아 떠나면, 덩그라니 아무런 취미 없는 쓸쓸한 초로의 남자만 남게 되는 것이죠. 그런 미래를 그리고 싶지 않아요.


김정운 그는 늘 제대로 놀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갑자기 인터뷰어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낚시 채널, 낚시 프로그램에 도시어부 같은게 나오고, 나는 자연인이다를 중년 남성들이 미칠 듯이 좋아 하는 이유가 뭘까? 떠나고 싶은 거겠죠. 그러지 못하면, 잠시 잠깐이라도 물리적으로 떠날 수 없다면 정신적으로 라도 남편으로, 아버지로의 책임감, 직장의 구성원으로의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걸 겁니다. 요즘 콘솔, PC, 모바일게임을 하는 가장도 많습니다.


그들도 마찬가지 이유죠. 현실의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땅을 사고 남자 아이돌과 같은 얼굴과 몸매, 장비를 갖추고 영웅이 될 수 있는 장소, 판타지를 꿈꾸는 것이죠. 내 왕국을 만들 수도 꾸밀 수도 있으니까…현실에서 부딪치는 부조리를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은 거예요. 내 돈으로 말이죠…)



어른도 자기만이 방과 자기만의 장난감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과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시골에서 올라와 자수성가한 의지의 아버지인데요 (차장 진급 실패..차마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최초 원작에는 1943년 생으로 나와요. 물론 시대에 맞춰 최근엔 1969년 생으로 나오기도 하죠. 아무튼 한국의 엄혹한 시대와 산업화 시대를 모두 겪은 세대라고 생각됩니다. 일본식민지, 해방, 한국전쟁, 군사정권, 새마을운동, 유신시대, 독재정권, 아이엠이프, 87민주화, 올림픽, IMF, 월드컵, 코로나까지 근, 현대사를 다 경험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힘든 시기가 IMF였어요. 먹고 살기 힘들고 부양하기 힘들고, 주변에 명예퇴직, 해고, 생각해보면 당시 정

말 암담했죠. 그래도 저를 포함해 가족의 힘이 있었기에, 그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뎠던 것 같아요




아닌 것 같지만 은근 츤데레 캐릭터인데…보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오면서 둘리에게도 선물을 사오잖아요. 물론 쌀쌀맞고 무심하게 ‘이건 네거다. 받아라.’ 하면서 성의없게 휙 던져주긴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표현하지 않지만 당신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는데요


뭐, 한지붕 아래 사는데 뭐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내 자식만 소중한 자식이 아니니…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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